제목 정치인 환멸이 선거 쟁점? 작성자 이병종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2950 등록일 2006/6/13 (10:12) 정치인 환멸이 선거 쟁점? Incumbents, Beware 한국 정계 개편돼도 국민 마음 돌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어 요즘은 어디서나 정치인들이 대접받지 못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정말로 미운털이 박힐 대로 박혔다. 2주 전 한 50대 남자는 야당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를 기습공격했다. 전 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 대표는 다른 후보의 선거 유세 지원에 나섰다가 범인이 휘두른 문구용 칼(커터)을 맞았다. 내년 대선의 강력한 후보자인 박 대표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60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범행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경찰 수사에 따르면 박 대표를 향한 개인적인 적의에서 나온 행동인 듯했다. 5월 31일의 중요한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을 향한 국민의 반감이 절정에 이르는 듯하다. 최근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미래 직업으로 정치를 선호한다는 한국인은 1%에 불과했다. 제시된 12개 직업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유권자들은 끝없이 터져나오는 부패 추문에 넌더리를 낸다. 이번 선거에서도 의원 여럿이 정치 지망자들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받는 중이다. 정당 간의 추하고 고질적인 정쟁도 여론을 더욱 등 돌리게 했다. 명백한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한국 정치인들을 향한 국민의 환멸(일부 논객들은 ‘증오 정치’라고 부른다)이 유일한 선거 현안인 듯하다. 한국의 정치적 물갈이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빈번하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탈락하는 현직자 비율은 언제나 아주 높다. 일례로 2004년 총선 당선자 중 현직 의원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근래 들어 가장 낮은 비율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반면 미국 하원의원의 재선 비율은 평균 90% 선이다. 다른 민주국가에서도 재선율은 70%다. 이번 지방선거의 선두 후보(시장·도지사·지자체의원)들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상당히 높은 지지를 받으며 당선이 확실시된다. 거기에는 그가 한때 정계와 의회를 떠났던 덕이 가장 크다. 그는 2년 전 재선이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입후보를 스스로 포기했다. 오 후보의 경쟁자인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유는 뭘까. 근년에 여러 차례의 정치 요직 제의를 거부하고 대신 변호사 일을 택했던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열린우리당은 경기도지사 후보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전 삼성 중역을 내세웠다. 지자체와 정부 인사의 빈번한 교체가 국가의 기초를 해친다고 일부 전문가는 주장한다. 신출내기 정치인들은 다양한 현안에 관한 입장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고 유권자들을 혼란시킨다고 그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낯익은 얼굴에 싫증을 내며 항상 새로운 얼굴을 택하지만 경험 부족 때문에 오히려 혹 붙이는 격이 되고 만다”고 고려대 정치학과 함성득 교수는 주장했다. “이런 악순환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문제의 태반은 정치인 자신들의 잘못에서 기인한다.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한국에선 아직 정치 절차에 관한 성숙된 관점을 가진 덕망있는 정치가들이 배출되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의 근대 정치사는 추문으로 얼룩졌다. 역대 대통령 중 대다수가 망명 또는 옥살이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욕을 얻어먹었다. 그들 중 다수(또는 가족)가 대규모의 부패와 뇌물 사건에 깊게 연루됐다. 근래 들어 여론의 비판은 무능에 집중됐다. 노무현 정부의 대다수 지도급 인사가 전문적 배경이 일천한, 젊고 진보적 이상주의자들이라는 점에서 놀림감이 됐다. 그들 중 다수가 학창시절인 1980년대에 군부 독재와 맞서 싸웠으며 그 후 노동운동 또는 민주화 운동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기업계나 정부 기관에서의 경험은 거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결적인 통치 스타일 때문에 정치 환멸이 커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투쟁적인 민주주의 운동가 출신인 노 대통령은 타협할 줄을 모른다. “노 대통령에게는 친구 아니면 적뿐”이라고 이정희 외국어대 정치학과 교수는 말했다. “절충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교체와 불안정을 낳는다. 노 대통령이 소속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20%에 불과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40%를 넘는다. 게다가 박 대표 피습 사건으로 이번 주의 선거에서 동정표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대패하면 노 대통령 임기 말년의 레임덕 신세만 부각될 뿐이다(대통령의 중임은 헌법으로 금지돼 있다). “집권 여당이 이런 식으로 계속하기는 어렵다”고 함 교수는 말했다. “지방선거 후 대대적인 정계 개편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승자들과 새로운 정치 질서가 아주 싸늘해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어떤 변화도 의미가 없다. 이병종 서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