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국의 시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작성자 이기동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2937 등록일 2006/7/18 (16:57) 미국의 시대 쉽게 끝나지 않는다 Seeing the Bright Side 유연성과 창의성으로 글로벌 경쟁 이겨낼 가능성도 높아 다른 나라는 미국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알아보려고 뉴스위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젊은 세계지도자(Young Global Leaders)’ 그룹에 속한 회원 몇 명의 의견을 들었다. ‘젊은 세계지도자’ 그룹은 정치·기술·비즈니스·연예 등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인 수백 명의 정책 결정자들이다. 뉴스위크가 인터뷰를 목적으로 선정한 사람 중에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 인도의 IT 담당 장관 다야니디 마란, 전 콜롬비아 문화장관 마리아 콘수엘로 아라우호,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회사 Alibaba. com의 최고경영자(CEO) 잭 마, 노키아 최고기술책임자(CTO) 테로 오얀페라, 독일 디 벨트지 편집인 얀-에릭 페터스, 그리고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로 ‘거인: 미 제국의 흥망(Colossus: The Rise and Fall of the American Empire)’의 저자인 영국인 학자 나일 퍼거슨 등이 포함됐다. 미국 경제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나. 페터스 : 경쟁, 유연성과 창의성, 실적 압박, 사회적 매정함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칠 줄 모르고, 경탄할 만하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떠오른다. 사카슈빌리 : 미국 경제를 생각하면 나의 미국 생활이 생각난다. 아내와 함께 뉴욕 퀸스구(區) 아스토리아의 지하방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6개월 만에 센트럴파크 부근에 멋진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법률회사에서 좋은 일자리도 잡았고, 기본적으로 무한한 기회를 누리게 됐음을 깨닫게 됐다. 세계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다. 아직도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나. 아라우호 : 물론이다. 그러나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지난해 중국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의 업무 능력과 규율, 그리고 집단이익을 개인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점이 무척 인상깊었다. 오얀페라 : 기술 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실리콘 밸리를 수시로 방문한다. 1년여 전 그곳에 갔을 당시 많은 기술관리자가 일자리를 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들이 관리하던 연구기술 일자리의 태반이 인도와 중국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핵심 아이디어만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다. 마 : 미국인은 자신감에 넘친다. 계속 그렇게 하는 한 아마도 경제적 주도권을 유지할 듯하다. 그러나 만일 계속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 우릴 따라잡는다. 우리가 뒤처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 심리적인 문제다. 퍼거슨 : 미국 달러화는 여전히 세계 기축통화다. 세계 금융을 담당하는 핵심 기관들도 본부를 미국에 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바뀔 듯하다. 세계 최대 채무국이 패권국이 되긴 어렵다. 미국식 모델의 장단점은 뭔가. 마 : 5∼10년 전에는 모두가 미국에 관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 모든 점이 좋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많은 문제점이 있다. 미국인은 강하고 자신감에 넘친다. 그러나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약점이 될지 모른다. 지나친 자신감에 차 있다. 그들은 옳거나 좋다고 믿는 일을 항상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어한다. 아라우호 : 미국의 사회적 유동성은 두말할 필요 없는 장점이다. 열심히 일하면 사회적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가 더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리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에의 지나친 집착, 그리고 군사정책과 경제정책이 너무 밀접하게 연관된 현실은 약점에 속한다. 일례로 석유 문제와 다소 관련이 있는 미국의 이라크 개입을 보라. 그러면 최근 몇 년간 미국의 경제 실적이 악화된 이유가 몇 가지 나온다. 페터스 : 사람들은 자체 약점 때문에 오래전에 미국 사회를 붕괴로 몰아갔어야 할 체제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유지된다는(그러면서도 다른 어떤 체제보다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경제적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너무 큰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 빈부격차, 빈번한 고용과 해고, 건강보험이 없는 수많은 사람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현재까진 장점이 약점보다 많았다. 영주권을 준다면 나도 미국으로 가겠다. 미국이 지도적 위치를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라우호 : 미국의 전통을 유지해 가면서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창의성·노동력·전문성을 대폭 활용하려면 이민 같은 문제에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예컨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계가 새로운 사업과 시장을 만들어 냄으로써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가는데도 이들을 무시하려 한다면 멕시코인들뿐 아니라 미국에 가족을 둔 다른 중남미계 사람들을 자극한다. 미국의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 : 미국 밖의 사람들이 미국에 관해 아는 지식보다 미국인이 바깥 세계를 훨씬 더 모른다는 점은 위험하다. 미국인들은 “이것이 길이고, 우리가 곧 세계다”라고 믿는다. 미국인이 TV 인터뷰에서 중국에 관해 하는 말을 들으면 내 입에선 “세상에, 전혀 아는 게 없네! 그러고도 다 아는 양 행세하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태도는 미래 미국의 지도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왜냐하면 “나를 전혀 모르면서 나를 이끌려고 해?”라는 대꾸가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 대국들의 부상이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리라 보나. 마란 :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세계 경제는 한 지역의 부상이 다른 지역의 희생을 딛고 이뤄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서로 연계돼 있고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선 어떤 경제도 다른 경제에 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다. 마 : 지도자가 되려 한다면 전적으로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중국 도가(道家)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미국의 입지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부상과는 무관하다. 아시아의 성장을 활용하는 한편 전략을 수정한다면 미국은 더욱 성장한다. 그러나 만일 미국인이 불안감을 느끼고 내부지향적이 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퍼거슨 : 일극(一極) 체제는 더 이상 의미를 상실했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상호의존도가 워낙 높아 이 문제를 심각한 어려움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미국 경제 규모는 여전히 중국보다 훨씬 더 크다. 또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중국인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경제력의 균형에 큰 변화가 일어나려면 한참 더 기다려 봐야 한다. 미국의 대학은 아직도 세계 최고인가. 퍼거슨 :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일하는 대학을 포함해 최고 수준의 대학들은 경쟁력 면에서 너무 앞서서 다른 나라 대학들이 어떻게 따라잡을지 난망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바뀔지 모른다. 아시아 대학들도 언젠가 엄청난 재정투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엄청나게 높다. 사카슈빌리 : 미국 대학은 언뜻 혼란스러운 곳처럼 보인다. 대학생 시절 나는 규율이나 통제가 전혀 없다는 점에 겁부터 났다. 몇 시간 동안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유럽에선 곧잘 알려줬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혁신과 자유는 혼돈에서 더 많이 나오므로 이 점에선 미국 대학이 유리하다. 오얀페라 : 미국의 교육제도는 과학 인재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다. 서구에선 지금까지 학생들이 과학을 직업으로 선택할 만큼 매력을 느끼도록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과학을 흥미진진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또 그런 업체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로 여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어려운 기술 문제나 수학 문제를 푸는 분야로 인식한다. 당연히 과학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다. 그러나 개도국 학생들은 과학의 길을 선택할 공산이 더 크다. 바로 여기서 이민 문제가 제기된다. 아울러 서양에서 사는 우리가 이들에게 얼마나 문호를 개방하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오늘날 외국인들이 서양의 대학에 들어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첨단기술 혁신에서 미국 주도는 얼마나 압도적인가? 미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인가. 마란 : 미국은 첨단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매우 굳건하다. 따라서 당연히 이 분야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어느 나라가 미국을 따라잡겠느냐는 물음엔 추측을 삼가겠다. 대신 다른 곳에선 첨단기술 혁신 클러스터가 만들어져 간다고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혁신은 본질적으로 협력적인 현상이고, 윈윈 상황이다. 미국과 타지역의 혁신 클러스터들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협력해야 한다. 페터스 : 미국인이 혁신을 주도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혁신의 결과를 시장에 내놓는 데는 최고다. 만약 혁신에 능한 독일 같은 나라들이 이런 능력까지 갖춘다면 미국은 훨씬 힘들게 된다. 기술 혁신 분야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거대하고 통합된 국내시장이다. 이 점에선 중국과 인도가 미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전 세계적인 반미 정서가 미국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아라우호 :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교역 상대국 입장에선 경제의 펀더멘털이 가장 중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문화에의 열망이나 공감 등 보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요소도 개입되게 마련이다. 예컨대 중국인들은 타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받아들이며 문화적 차이를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이것은 자기 나라를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마란 : 아니다. 그렇지 않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자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진 반미 감정이 경제적 반미주의로 연결되지 않았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대체로 이념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 퍼거슨 : 나도 같은 생각이다. 반미주의는 전에도 많이 분출됐다. 그러나 반미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경제 정책 결정권자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페터스 : 하긴 부시 반대 시위를 하면서도 코카콜라를 마시니까. 후일 사람들은 우리의 현시대를 돌이켜 보며 ‘미국의 시대’로 정의할까. 사카슈빌리 : 전통적 의미에서의 일극 세계는 분명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치를 정하고, 본받을 만한 모범적 사례가 되고,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면에선 절대 미국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못한다. 오얀페라 : 지난 20년간은 분명 미국 문화가 주도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국가보다는 디지털 기술이 만든 글로벌 커뮤니티가 더 중요한 시대로 진입한다. 이런 시대를 이끄는 흐름 중 일부는 미국이 주도했다. 예컨대 회원들이 서로 콘텐트를 공유하는 사이트, 사용자 간 정보 교환을 통해 다양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소셜 네트워킹’과 블로깅 등이다. 다시 말해 이젠 지리적 구분보다는 인터넷과 인터넷 이용자들이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마란 : 지금은 지구촌적 상호의존의 시대다. 후세가 이 시대를 원자의 세계에서 바이트의 세계로, 산업과 제조업의 시대에서 정보와 지식의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로 회고하리라 본다. 퍼거슨 : 20세기를 미국이나 서양의 세기로 규정한 일은 잘못이었다. 1990년 이후를 길게 보면 일본을 시발로 한 아시아의 르네상스 또는 부흥기였기 때문이다. 1750년부터 1900년 무렵까지 세계 경제력은 아시아의 퇴조와 미국 등 서양의 강력한 부상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불균형적 상태가 됐다. 후일 사람들은 지금을 되돌아보며 2006년은 세계 경제력이 대대적으로 재편되는 시기였다고 말할 듯하다. Reported by STEFAN THEIL in Berlin, Steven Ambrus in Bogota, Sudip Mazumdar in New Delhi, Melinda Liu in Hangzhou, Anna Nemtsova in Tbilisi, Rana Foroohar in London and Tony Emerson in New York 이기동 (newsw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