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경제학자 故 해리 매그도프] 노동자 진압 충격…평생 좌파로 살아 작성자 김준현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6480 등록일 2006/4/28 (10:14) [삶과 추억-美 사회주의 경제학자 故 해리 매그도프] 노동자 진압 충격…평생 좌파로 살아 “비판적 이성 갖되 가슴은 따뜻해야” 신조 … 50년 매카시즘 때 피해도 하버드 학파니 시카고 학파니 하면서 티격대지만 미국 경제학계에서 대접받으려면 주류 경제학을 해야만 한다.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일면 이해도 된다.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사회주의 경제학자로 자리 매김한 해리 매그도프가 지난 1일 92세의 일기로 숨졌지만, 일주일도 더 지난 9일에서야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제대로 된 부고 기사를 게재한 매체도 뉴욕 타임스가 거의 유일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경제학자로서 그의 업적과 영향력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1969년. 베트남전은 미국의 반공산주의 때문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 그의 저서 『제국주의 시대: 미국 해외정책의 경제학』은 15개 언어로 번역돼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65년부터 그가 기고한 사회주의 잡지 ‘월간 리뷰(Monthly Review)’는 60년대 말 미국·유럽·일본에서 벌어진 좌파 학생운동의 사상적 양식이 됐다. 지난해까지 그는 아들인 프레드 매그도프와 실업과 사회주의에 관한 에세이를 집필하는 등 나이를 초월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줬다. 매그도프는 1913년 뉴욕 브롱스의 유대계 러시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페인트공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년)과 러시아혁명(1917년)의 여파로 어린 시절 그는 전쟁과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러다 그가 15세 때 우연히 접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은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매그도프는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하나의 계시처럼 다가왔다”고 회고했다. 그 이듬해(1929)에는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됐다.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서 집회를 하던 노동자들이 경찰들로부터 잔인하게 진압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은 그의 급진적 성향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뉴욕 시티 칼리지에서 노동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치고, 좌파 학생단체와 산하 기관지를 이끌었다. 이후 그는 사회주의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32년엔 좌파 학생단체의 동료였던 비아트리스 그레이저와 결혼해 70년을 함께 산다. 이 같은 활동으로 그는 뉴욕 시티 칼리지에서 제적당하고 36년에서야 뉴욕대에서 학사학위를 받는다. 졸업 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연구소에서 노동생산성 측정 방법 등에 관한 논문으로 주목받은 그는 루스벨트와 트루먼 정부에서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경제 통계·정책 과정에 참여한다. 사회주의에 경도돼 있었음에도 매그도프는 나름대로 탄탄한 경력을 쌓아간 셈이다. 하지만 그는 50년부터 미국 각 부문에 몰아친 매카시즘의 독침을 피해갈 수 없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 당시 상원의원이 ‘소련에 기밀 경제자료를 넘겨준 간첩단의 일원’으로 매그도프를 비난한 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났다. 53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 매그도프는 혐의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공직에서 물러나고 생활이 곤궁해진 매그도프는 보험 판매원, 주식 브로커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65년 그가 공동 소유주로 있던 ‘러셀 앤드 러셀’이란 출판사 지분을 팔면서 형편이 좀 나아진다. 이후 본격적인 저술활동을 재개한 매그도프는 폴 스위지가 만든 월간 리뷰에 의욕적으로 글을 게재한다. 스위지는 슘페터의 제자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2004년 사망했다. 매그도프는 끊임없는 탐구욕으로 70∼80년대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문제점, 90년대엔 국제화가 가져올 병폐와 소비에트 경제권의 몰락 원인 등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월간 리뷰 덕분에 쿠바 혁명의 주역 체 게바라와도 인연이 깊었던 그는 2004년 그를 회고하는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매그도프는 에세이에 “내가 쿠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신은 잘 알 것이다. 내가 할 일이 뭐냐”고 게바라에게 물었고 그는 “나를 계속 일깨우는 것이 당신이 할 일”이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월간 리뷰는 그가 숨진 뒤 게재한 글에서 “생전에 매그도프는 ‘비판적인 이성을 가지되 가슴만은 따뜻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며 “그의 따뜻한 가슴은 언제나 우리를 일깨울 것”이라고 썼다. 김준현 중앙일보 기자 (takeit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