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진정한 명품은 무엇과도 타협 안 해” 작성자 dlzhshal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5204 등록일 2006/11/21 (20:23) http://bill.joins.com/magazine/magazine/economist/eco_article_view/0%2C5360%2Caid-253846-servcode-A380381%2C00.html “진정한 명품은 무엇과도 타협 안 해” 페루서 만난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 회장 “품질 위해서라면 시장점유율·가격·비용은 외면할 수 있어야” 페루의 수도 리마는 태평양과 마주하고 있다. 안데스 산자락이 태평양과 만나 만든 좁은 평지에 위치한 리마는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 잉카제국의 중심지였고, 그 후에는 스페인의 남미 지배의 컨트롤 타워였다. 2006년의 리마는 아직 예전의 영광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관광지에는 구걸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가옥은 한국의 1960년대 풍이었다. 유적지에는 여전히 스페인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었다. 리마처럼 해안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놓여 있는 몇몇 평지를 제외하면 페루는 거대한 안데스 산맥으로 꽉 차 있다. 해발 3800m로 세계 최고(最高)의 호수인 티티카카도 남미의 지붕 안데스 산맥 위에 놓여 있다. 차를 타고 잉카문명의 유적지인 마추픽추로 가는 길 역시 3000~4000m의 고원지대를 넘나들어야 한다. 심장이나 폐가 약한 사람은 3000m 지점부터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4000m에 이르면 급기야 호흡이 가빠지고 졸음도 온다. 안데스 고원은 가위 장관이었지만 가쁜 호흡 때문에 운치를 맘껏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왕복 비행거리 3만2500km, 비행시간 40시간이라는 간단치 않은 물리적 거리에도 페루까지 간 것은 비쿠냐 때문이다. 해발 4000m 부근의 고원지대에 서식하는 비쿠냐의 털은 현존하는 재료 중 가장 섬세한 섬유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냥과 포획이 남발되면서 한때 멸종 위기에 닥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세계적 명품 브랜드인 로로피아나는 페루 농민과 함께 비쿠냐 보존에 공을 들였고, 1994년부터 합법적으로 비쿠냐 털을 이용한 옷감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최고급 울과 캐시미어, 비쿠냐로 만든 스웨터와 코트 등의 원단은 브랜드와 상관없이 상당수 로로피아나가 공급하고 있다. 로로피아나는 전 세계에서 120수 이상의 고급 울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회사다. (120수는 양모 1g에서 120m의 실을 뽑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수가 높을수록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다) 고급 원단 시장에서 로로피아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브랜드보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높은 품질로 정평이 나있다. 80년대 이후에는 패션시장에도 뛰어들어 명성을 쌓고 있다. 최고급 스웨터와 코트 등 직물 제품뿐 아니라 신발·가방 등 가죽 제품도 출시하는 등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 회장은 최고급 원단인 비쿠냐를 알리기 위해 페루에 왔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원단 중 최고급 원료인 비쿠냐 산지 페루를 찾은 피에르 루이지 회장은 “품질을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아야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세계 최고의 명품 업체를 경영하는 오너가 말하는 명품의 정의와 명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도대체 명품은 무엇이고 한국도 이런 명품을 만들 수 있을까? “브랜드 만드는 데 돈 쓰지 않아” 언제부터, 또 왜 비쿠냐를 이용한 사업을 구상했나? “비쿠냐는 내 아버지가 했던 사업이다. 우리 아버지는 비쿠냐 털로 코트를 만들었다. 1966년 이전에는 비쿠냐를 이용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지 않았다. 비쿠냐의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더 이상 비쿠냐 제품을 만들지 못했지만 나는 항상 비쿠냐를 이용한 사업을 구상해 왔다. 1970년대 후반 페루 정부, 농민단체와 함께 비쿠냐를 죽이지 않고 털만 깎아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20년 가까이 노력한 끝에 1994년부터 비쿠냐 털을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명품(luxury)은 대부분 비싸다. 당신이 생각하는 명품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명품은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품질(quality with uncom- promisng)’이다. 품질을 위해서라면 시장점유율, 가격, 비용 등은 외면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점유율을 위해 품질과 타협하고 많은 물량을 생산한다면 명품이라고 할 수 없다. 가격과 비용을 맞추기 위해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외면하는 것도 명품이 아니다. 명품이기 때문에 비쌀 수는 있지만 비싸다고 다 명품은 아니다. 명품은 쓸모 있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과 품질, 만족도를 제공해야 한다.” 명품의 판단 기준이 기능이라는 말인가? “최고의 품질이다.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여러 개가 있다. 로마에서 밀라노까지 어떤 차로도 갈 수 있다. 하지만 벤츠나 벤틀리 등 흔히 명차라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 외에 안락함이나 안전함, 편안함을 더해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낸다. 옷을 단순히 몸을 가리고 따뜻하게 하는 기능만으로 정의한다면 그런 것은 몇 달러짜리부터 몇 만 달러까지 있다. 하지만 얼마나 부드럽고, 가볍고, 따뜻하고, 멋있느냐에 따라 품질이 결정된다. 기능은 같지만 품질은 같지 않다. 최고의 품질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일부에서는 명품의 요건으로 브랜드 파워를 꼽는다. “우리는 브랜드 만들기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불행히도 우리는 사업을 한 지 6세대가 지났는데도 아직 빅 브랜드가 되지 못했다. 나는 우리 브랜드가 광고가 아니라 제품의 명성에 의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의 일관된 전략이다.” 빅 브랜드가 되고 싶지 않은가? “틈새시장에서 빅 브랜드가 되고 싶다. 어차피 우리는 아주 세련된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삼는다. 최상류층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겨냥한다. 그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제품만 생산해서 판매할 것이다. 우리 소비자는 항상 뭔가 최고의 것(really top)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걸 제공하면 성공한다. 그렇지 않고 평범한 것을 제공하면 우리 소비자들은 다른 제품을 살 것이다.” 세계에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있다. 로로피아나는 다른 명품과 뭐가 다른가? “우리는 완전히 다른 역사와 영혼을 가지고 있다. 로로피아나는 원단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품질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그냥 보기 좋은 옷이 아니라 입으면 좋은 옷들이다. 골프웨어를 만들 때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골프를 쳐본다. 그래야 제대로 옷을 만들 수 있기(well-made) 때문이다. 때로 우리 옷은 좀 평범해 보이지만 그런 옷들이 수천 벌씩 팔려나간다. 이게 우리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잘 만들고 싶고,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옷을 만들고 싶다. 몽골이나 뉴질랜드에 있는 원단 공장에서부터 제품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점검한다. 우리는 그냥 특이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거는 회사가 아니다.” “한국은 패션산업 중요시 안 해” 주식시장에 등록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가 명품을 만드는 것과 관계가 있나? “장기적인 투자와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에 등록하는 것이 큰 도움이 안 된다. 3개월마다 사업성과를 보고해야 되면 단기 수익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2001년 이후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꾸준히 한 방향으로 매진한 결과 지난해 26% 성장했고, 올해도 두 자릿수 성장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패션 명품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집중돼 있다. 한국은 섬유 분야에 강국이지만 아직 세계적인 브 ▶페루 전통 모자를 쓰고 현지인과 얘기하는 피에르 루이지 회장. 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한국은 이미 휴대전화, TV, 반도체 등에서 명품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이제 이탈리아 전자기업이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에 명품 패션 브랜드가 없는 것은 패션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50년 넘게 의류 제품을 해외에 팔아왔다. 하이테크 분야에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패션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와 기업이 패션산업에 투자한다면 충분히 명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한국에는 충분한 기술이 있다. 서구에서는 미니멀리즘이나 젠(zen·禪) 같은 동양적 가치가 유행하고 있다. 문제는 패션산업을 어떻게 보느냐다.” 한국 시장은 어떤가? “외환위기 이후 약간 판매가 줄었지만 그 이후에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눈도 까다롭고 수준이 높다. 우리가 얘기하는 품질을 잘 이해하고 중시하는 소비자 중 하나다. 여전히 정장(formal wear)마켓이 크다는 점도 눈에 띈다. 우리의 주력인 레저 웨어나 위크엔드 웨어 시장은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한국은 또 많은 국내 패션업체가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원단을 파는 것도 중요한 비즈니스 중 하나다.” 로로피아나는? 전 세계 88개 매장 직접 운영   로로피아나는 울과 캐시미어 원단을 유럽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업체다. 1812년 이탈리아 북부 산간지방인 트리베로에서 로로피아나의 5대 조부인 지아코모 로로피아나(Giacomo Loro Piana)가 처음으로 원단을 생산했다. 말 그대로 구멍가게 수준에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로로피아나는 처음부터 품질관리를 까다롭게 했다. 1941년 피에트로의 조카인 프랑코가 대를 이으면서 회사는 급성장했다. 로로피아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캐시미어와 울 원단 부문에서 유럽 최대 생산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세계로 뻗어나간 것도 이때부터다. 60년대부터 시작한 원단수출은 70년대에 고급 캐시미어와 양모로 확장됐다. 80년대 들어 프랑코의 두 아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최고의 원단을 생산하던 로로피아나는 이때부터 직접 럭셔리 제품을 만들었다. 코트에서 시작된 로로피아나의 패션사업은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신발·가방 등 액세서리와 가죽 제품 등으로 확장됐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은 3억3330만 유로(약 4000억원)였고, 현재 전 세계 점포 수는 88개에 이른다. 2008년까지 100개의 소매점을 여는 것이 목표다. 로로피아나는 생산뿐 아니라 판매에서도 철저한 품질 우선주의를 견지하고 있어 법적으로 프랜차이즈를 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전 세계 매장을 직접 운영한다. 로로피아나는 폴로팀·승마팀·클래식 자동차 경주팀·요트팀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 스타일을 알린다. 이런 스포츠팀의 필요에 맞는 옷을 개발해 직접 상품화하는 것도 로로피아나의 특징 중 하나다. 로로피아나는 세르지오와 피에르 루이지 형제가 3년씩 번갈아가며 CEO를 맡는 특이한 경영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피에르 루이지 형제가 CEO다.   비쿠냐는? 털로 만든 스웨터 130g도 안 돼   비쿠냐의 털은 현존하는 천연섬유 중 가장 가는 실을 뽑을 수 있다. 잉카시대 때도 귀족들만 사용한 비쿠냐의 털은 ‘신의 섬유’라고 불릴 만큼 값진 옷감이었다. 비쿠냐의 생김새는 사슴에 가깝다. 작고 예뻐 ‘안데스의 공주’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몸 색깔은 부드러운 금빛이며 목 아래쪽에서 앞가슴에 이르는 부분에 20~30cm의 희고 긴 털이 나 있다. 해발 3000~4000m의 안데스산맥 고지대 초원에 서식한다. 털이 가늘면서도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 비쿠냐 털로 만든 스웨터는 무게가 130g이 채 안 되는 것도 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남미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많이 서식했지만 값비싼 털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1976년부터 비쿠냐를 이용한 일체의 상품거래가 금지됐다. 이후 30년 가까이 농민단체와 국제기구의 보호로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1994년 로로피아나가 현지 농민조합과 함께 비쿠냐 털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지금도 비쿠냐는 도살이나 사냥이 금지돼 있다. 털 깎기 등 개체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합법적인 유통이 가능하다. 비쿠냐는 캐시미어나 울과 달리 연간 생산하는 털의 양이 극히 적다. 울의 원료인 양은 한 마리당 1년에 평균 500g 이상의 털을 깎을 수 있지만 비쿠냐는 2년에 한 번 200g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전 세계 연간 총생산량도 3000kg에 불과하다. 또 털 깎기는 물론 털 골라내기 등 전 과정이 손으로 이뤄진다. 캐시미어나 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마(페루)=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