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 경제성장 뿌리는 개방… FTA 협상 앞서 개혁 더 절실하다” 작성자 김방희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8545 등록일 2006/12/2 (0:56) [IN&OUT REPORT 경제] 왜 두려워 하나? 개방의 역설 “한국 경제성장 뿌리는 개방… FTA 협상 앞서 개혁 더 절실하다” 중국과 멕시코 경제는 여러모로 다르다. 무엇보다 중국은 현재 매년 9%씩,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다. 반면 멕시코는 성장 속도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둘쭉날쭉인데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주기적으로 엄습한다. 한마디로 두 나라 경제는 적어도 지금 하늘과 땅 차이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경제학자가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두 나라의 처지가 정반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기에는 부양해야 할 인구가 너무 많았다. 비록 1970년대 사회주의 체제 국가로는 이례적으로 개방을 선언했지만 성장의 토대가 될 자본이 없는 상태였다. 반면 멕시코는 경제 발전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였다. 이 나라는 석유를 포함한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에 인접해 있다.미국의 자본과 공장, 그리고 일자리는 모두 이 미국의 뒷마당 차지인 것처럼 보였다. 1994년 멕시코가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자, 이 나라 경제는 날개를 다는 듯했다. 멕시코의 실패와 중국의 성공 교훈 삼아야 그런데 모든 경제학자의 전망을 비웃듯,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자본과 공장, 일자리는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멕시코는 뒷전이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똑같이 개방을 경제발전 전략으로 삼은 이 두 나라의 차이를 결정지었을까? 세계의 자본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중국의 성공을 닭과 달걀의 문제로 돌려놓고 만다. 중국의 엄청난 인구가 부양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 아니라 세계 최대의 소비자가 운집한 시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세계화의 주창자로 떠오른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훨씬 더 명쾌한 이유를 제시한다. 두 나라 모두 개방화 전략을 폈지만, 두 나라의 개혁이 개방의 성패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신중한 개방을 표방하면서 동시에 과감한 대내 개혁을 단행했다. 외자 우대정책을 포함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반면 멕시코는 더욱 적극적인 개방 의지를 내비쳤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과 공장 그리고 일자리를 끌어들일 만큼 개혁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항상 정정(政情)과 금융시장이 불안했고, 외자 우대정책은 구호뿐인 정책이었다. 한마디로 기업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이 두 나라, 중국과 멕시코가 우리나라에서 충돌하고 있다. 개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 이야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찬반 논란에서 찬성론자들은 중국의 예를 들고 나온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멕시코의 예를 이야기한다. 최근의 여론은 애초 찬성이 미세하나마 우세한 형국에서 반대론이 다소 앞선 상황이다. 반대 단체들의 시위가 집중되고, 각종 미디어가 반대론을 집중 조명한 것이 그 이유일 터다.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멀리 중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야말로 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가장 성공적인 예라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반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는 30여 년 만에 세계의 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개방을 통해 일어선 나라인 셈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개방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한·미 FTA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뽑아든 카드이기 때문이다. 민심을 잃은 이들이 추진하는 정책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거나 적어도 미더워하지 못하는 이가 상당수다. 더욱이 한·미 FTA는 갑작스럽게 꺼내든 느낌이 있는데다 이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사뭇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사람까지 나서서 반대하고 보니, 지지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적극적 개방 전략과 관련해 여론주도층을 포함한 국민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사람들의 태도와 신념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상태)’를 겪고 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어서 선뜻 좋아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개방으로 성공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개방에 대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도 개방을 두려워하게 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이 피해의식의 연원은 멀리 한반도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던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 더해 개방을 통한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농업분야는 사실 우리 국민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농민의 자손인 우리 국민은 농민들에게 상당한 죄의식을 갖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협상 당시에도 개방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경제 개방의 본질적 특성 때문이다. 개방을 통해 득을 보는 분야는 경제와 사회 전 분야다. 개방을 통해 경쟁이 치열해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과정은 추상적이다. 반면 개방의 피해와 그 대상 계층은 지극히 구체적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개방 지지자들의 주장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공공선택학파 경제학자인 맨커 올슨이 특수 이해집단의 역설에서 이미 설파한 그대로다. 개방 자체보다 개방 통한 경제발전 더 중요 마지막으로 세계화가 가진 근본적 한계도 반대론의 정서를 자극한다. 사실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세계화는 현실적으로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를 안정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더 불안해진 면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 총재의 한마디에 세계 주식시장과 자본시장이 크게 휘청거리고, 몇몇 나라의 경제적 결함이 증폭돼 지역적 금융위기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은 세계화를 주창하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이상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이것이 현재 세계화 반대 여론이 널리 확산한 근본적 이유다. 세계화에 기여하는 국제회의장 앞에는 반드시 반대 시위 피켓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개방에는 중국과 멕시코의 요소가 모두 내포돼 있다. 중요한 것은 개방 자체가 아니라 개방화 전략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두 나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나라는 개방의 성공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바 있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기에 우리가 비교적 신중하게 개방을 잘했다면, 개혁 조치 없이 개방을 적극적으로 진행한 결과 맞은 것이 외환위기였다. 두 기업 이야기도 있다. 삼성그룹은 세계화를 위기로 인식하면서도 적극 수용해 이를 기회로 바꿔 놓았다. 반면 대우는 세계화의 기회가 제공한 장밋빛 전망에 취해 위기를 자초했다. 한마디로 지금은 개방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개방과 함께 진행해야 할 개혁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다. 그것이 중국 대 멕시코, 고도성장 대 외환위기, 삼성 대 대우 가운데 우리가 어떤 처지가 될 것인지를 결정지을 것이다. 김방희_ 생활경제연구소장 (riverside@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