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모든 돈은 런던으로 통한다 작성자 김영진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21379 등록일 2006/12/24 (2:4) 모든 돈은 런던으로 통한다   빅뱅 20년 영국 금융의 부활… 규제는 없고 원칙만 있다 카나리워프만 흥청대는 게 아니었다. 전통의 런던 금융가 ‘더 시티(The City)’. 이곳 역시 요즘 곳곳이 공사판이다. 말끔한 차림의 뱅커들과 안전모를 쓴 건설 노무자들이 혼재돼 있다. 금융타운 한복판인 방크(Bank)역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건물 꼭대기에서 움직이는 크레인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 뒤편에 자리잡은 26층짜리 옛 증권거래소 건물도 리퍼비시(Refurbish·일종의 리모델링으로 영국에선 흔한 용어)가 한창이다. 건설현장은 방크역 사방 1평방 마일(약 77만평)로 이어진다. 스퀘어 마일(Square Mile·1평방 마일)로도 불리는 런던 금융타운 ‘더 시티’. 정확하게는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이다. 런던에선 그냥 ‘시티’로 통한다. 호황으로 금융타운 ‘시티’는 비집고 들어갈 사무실이 부족해 난리다. 리퍼비시는 사무실을 더 내기 위한 공사다. 런던 부동산 중개회사인 피크손 관계자는 “시티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서 있다”며 “은행은 물론 법률·컨설팅 회사 등 관련업종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경제는 런던 덕분에 57분기째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런던이 세계금융의 메카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빅뱅(Big Bang·금융개혁) 20년 만의 결실이다. 1979년 전면적인 외환자유화 조치로 탈(脫)규제의 신호탄을 올린 영국은 1986년 10월 27일 당시 대처 총리가 최저 중개수수료 폐지 등 증권시장 자유화 조치, 해외 금융회사 진출 자유화 등을 채택하면서 일대 금융시장 수술에 나섰다. ■세계의 돈은 런던에서 돈다 런던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의 7.5%에 불과하지만 외국 주식의 43%가 런던에서 거래되고 있다. 런던은 또 외환거래의 세계 최대 시장이다. 하루 평균 외환거래액이 1조109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전 세계 외환거래의 32% 이상을 런던이 소화하고 있다. 이밖에 국가간 은행대출과 장외파생상품거래, 해상보험 순보험료 수입 등 주요 금융거래 부문에서 뉴욕·도쿄·프랑크푸르트 등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금융허브가 됐다. 특히 영국에서 활동하는 347개 은행 중 76%(264개)가 외국계 은행이다. 반면 미국은 전체 은행 수는 7540개로 세계 최대지만 외국계 은행은 228개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세계 2위 파이프 생산업체인 TMK는 최근 1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 장소로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를 저울질하다 런던을 택했다. 런던이 돈을 끌어모으기에 더욱 매력적인 금융센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9·11 테러와 엔론 사태 이후 미국이 회계규정을 강화하자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까다로운 뉴욕을 피해 런던으로 모이고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각국 기업들이 런던증권거래소에서 IPO(기업공개)를 통해 조성한 자금은 179억 파운드(332억 달러)나 된다. 반면 같은 기간 뉴욕증권거래소의 IPO 실적은 265억 달러에 그쳤다. 크레디트 스위스 영국본부의 숀 캉 이사는 “올해 IPO 물량이 작년보다 60%나 늘었다”며 “얼마 전 중국 국영은행이 런던에서 대규모 IPO를 실시했는데 경쟁률이 10대1에 달할 정도”라고 전했다. 한국에서도 롯데쇼핑과 금호타이어, 하나투어가 런던에 상장한 데 이어 얼마 전 SK인천정유가 런던 상장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이 있으면 돈이 모이는 법. 돈의 출처를 묻지 않는 런던은 헤지펀드의 천국이다. 유럽 내 헤지펀드의 64%(약 900개)가 런던에 있고 운용자산은 지난 6월말 현재 3170억 달러에 이른다. 대부분의 헤지펀드는 영국 인근의 아일오브맨·겐지 섬은 물론 멀리 케이만군도·브리티시 버진 아일랜드·버뮤다 등 조세 피난처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약 1조원 가량을 굴리는 파비앙 픽텟&파트너스 관계자는 “헤지펀드는 3년에 80% 정도 망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설립이 용이하고 돈이 몰리는 런던에선 헤지펀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규제는 없다, 원칙만 지켜라 런던의 금융회사들은 영국 금융감독기구인 FSA보다 담당 회계법인이 들이닥칠 때를 더 무서워한다. FSA가 이상징후를 발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금융회사에 문제점이 나타나면 FSA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 해당 회계법인을 시켜 확인하고 통보하게 만든다. 최근 FSA에서 지점 인가를 받은 기업은행 강호창 런던지점장은 “인가절차에서 받은 FSA의 느낌은 영업규제보다 런던에서 분탕질할 금융회사인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고 말했다. 그런 FSA가 최근 10% 인원 감축 계획을 세웠다. 설립 6년 만에 처음 실시된 감사원(NAO) 감사 결과 “불필요한 규제가 많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일대 혁신을 단행키로 한 것이다. 금융규제가 적어 해외자본이 몰려들고 있는 FSA의 새로운 금융감독 방향은 ‘규제(rule) 위주에서 원칙(principle) 위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런던 방크역 인근 알더만베리에 위치한 JP모건 사무실 2층. 천장에는 각국 주가를 알리는 10여개의 전광판이 매달려 있고 그 아래에서 250여명의 주식 딜러들이 전화기나 이어폰을 꽂고 데스크 톱 앞에 앉아 있다. JP모건 런던본부의 패트릭 한 이사는 “뉴욕에선 밤을 꼬박 새워야 런던시장을 알 수 있지만 여기선 하루 동안에 도쿄를 거쳐 런던과 뉴욕 시황까지 전 세계 주식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며 “오후 1시엔 뉴욕 JP모건 본부에서 투자방향을 알려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했다. 도쿄보다 9시간 늦고 뉴욕보다 5시간 빠른 런던은 글로벌 금융허브로서 이상적인 시간대(time zone)를 갖고 있다. 영국 국제금융센터인 IFSL의 덩컨 매킨지 이사는 “런던의 금융규제가 심플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법률·회계 등 금융을 뒷받침하는 전문가가 곳곳에 깔려 있는 것도 주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 4대 로펌 중 3개가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런던 소재 100대 로펌이 고용하는 직원만 1만7000명에 이른다. 100대 로펌이 런던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수수료 수입만 100억 파운드(19조원)에 달한다. ■금융서비스로 연 36조원 창출 영국이 지난해 1년간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 등 금융관련 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190억92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36조원에 이른다. 올해도 호황을 누려 런던 뱅커들은 올 크리스마스 때 보너스 대박을 맞았다. 영국 경제비즈니스 연구센터(CEBR)는 “금융타운인 시티지역의 연말 보너스 총액이 작년보다 18.3% 확대된 88억 파운드에 달하고 100만 파운드 이상 받을 사람도 작년(3000명)보다 많은 4200명 선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런던의 금융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 같다.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줄리앙 캘로 이사는 “미국·독일·프랑스 은행은 물론 불황에서 벗어난 일본 은행 등 런던의 영업력을 강화하려는 금융회사들이 많다”고 했다. 김영진 런던 특파원 helloj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