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이 없던 시대 우리 조상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부적에 의존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집을 지을 때, 심지어 나무하러 갈 때도 부적을 썼죠. 과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부적은 살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부적을 팔 정도니까요.”

부적 수집가 윤열수(60) 씨. 왜 하필 ‘부적’을 수집하느냐는 질문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또 아무도 수집할 것 같지 않아 덤벼들었다”고 웃으면 말한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욕심 나는 우표가 있으면 친구와 주먹질을 해서라도 챙기던 우표 수집광이었다. 그러던 그가 부적으로 눈을 돌린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도둑 사건을 겪고 난 뒤부터였다. 그가 고향집에 다니러 간 사이 하숙집에 도둑이 들어 책상 서랍에 보관했던 우표를 몽땅 들고 간 것. 그는 ‘다시는 도둑맞지 않게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을 모으자’고 결심했다. 그것이 부적이었다.

▶만사형통 삼재부 및 원통형오막부 등 다양한 부적판. 삼재 부적에는 머리 셋 달린 독수리를 그린다.

“할아버지께서 훈장님이었음에도 어려서부터 집에 부적이 참 많았어요. 우리집뿐만 아니라 큰집, 작은집 할 것 없이 농촌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부적을 일상적으로 썼거든요. 시골집에서 흔하디 흔한 것이 부적이었죠.”

▶1 떡살에 새긴 부적. 현대과학이 없던 시대 우리 조상들은 삶의 곳곳에 부적을 붙여 액을 막고자 했다. 2, 3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손바닥만 한 부적을 엮은 ‘수진부적’의 표지와 그것을 펼쳐 놓은 것. 4 눈병 난 사람에게 그려줬던 부적.

친척집을 돌며 부적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그는 점점 행동반경을 넓혔다. 남의 집에 부적을 얻으러 갔다 부정탄다며 쫓겨나기도 했다. 반면 어린 학생이 부적을 수집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고 집에 붙여 두었던 부적을 손수 떼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좌)윤열수 가회박물관장이 박물관 한구석에 원형 그대로 재현한 전남 곡성의 한 민가 앞에서 각종 부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 회화적 미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부적. 방 출입문 위에 붙여 귀신이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부적이다.

인사장교로 복무하던 군대 시절에는 사병들에게 휴가 갔다 돌아올 때 부적을 안 가져오면 못 들어온다고 공갈(?)을 치기도 했다.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의 부적을 꽤 많이 모을 수 있었다.

▶1 <동의보감>에 딱 한 장 등장하는 순산을 위한 부적. 2 이씨를 상대로 송사를 벌인 김씨가 이씨를 염력으로 가둬 두기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부적. 3 집에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툇마루 밑에 직접 그린 마루바닥 묵서 부적. 4 호패에 그린 부적. 드물게는 호패에 직접 부적을 그려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수집 대상이었지만, 수집한 부적이 늘어남에 따라 부적에 대한 그의 사랑도 커져만 갔다. 흔히 부적이라고 하면 붉은 글자가 암호처럼 적힌 종이를 떠올리지만, 호랑이·닭·개·해태 같은 동물 문양을 사용한 조선시대의 부적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당시 민중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 재물이 많이 들어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적. 부의 상징인 돼지가 그려져 있다. 2 윤열수 씨가 가장 최근에 수집한 부적. 지난 1월 청주에 사는 사람이 그가 부적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내줬다고 한다. 3 무당의 무구인 나무칼에 그린 부적.

민화 박물관에 취직한 영문학 전공자

그는 “부적은 일종의 민화이자 민중예술”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세 가지 재난, 즉 수재·화재·풍재를 막기 위한 ‘삼재부(三災符)’만 해도 만든 사람에 따라 또 만든 지역과 시대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그 매력에 빠져 버렸죠.”

▶여러 처방에 따른 부적들. 부적은 목판으로 찍어내기도 하지만, 손으로 직접 그리기도 한다.

그의 수집열은 삶의 진로까지 바꿨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인 영문학과는 전혀 상관없이 1970년대 ‘민화 수집가’로 유명했던 고 조자룡 씨가 운영한 에밀레박물관에 취직한 것.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불교미술·사학·문화인류학 등을 공부했다. 또 주말이면 전국을 돌며 부적을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집 폭이 민화·요강·실패 등으로 넓어졌다.

▶목판으로 찍은 부적들이다.

이렇게 그가 평생 발품을 팔아 수집한 것이 총 1,500여 점. 그는 이들을 분류해 2002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가회박물관’을 세워 운영 중이다.

▶부적을 찍을 때 사용하는 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