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곧 경쟁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본격적인 개방 경제로 나서는 우리에게 중국과 인도의 사례가 시사하는 점은 분명하다. 영어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의 큰 틀에서 ‘하청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어는 개방경제 국가의 중요한 사회 인프라다. 영어가 통해야 기업과 자본과 우수한 인력들이 몰려와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가 창출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영어 후진국이다. 2004~2005년 한국인 토플(TOEFL) 응시생의 평균 점수는 213점(300점 만점)으로 세계 212개국 중 91위, 아시아 32개국 중 16위를 차지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지난해 한국인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61개 조사 대상국 중 중하위권인 35위라고 발표했다. 영어교재저술가 조화유씨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꼬집는 ‘3S 현상’이란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국제회의에만 나가면 ‘말없이(silent)’ ‘미소만 짓다가(smile)’ ‘존다(sleep)’는 뜻이다.

◆영어 망치는 영어 교육

그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영어교육의 비효율성 문제를 주로 지적한다. 투자는 많이 하는데,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영어교육학회에 따르면, 한국인은 중·고·대학교 10년간 평균 1만5548시간을 영어를 배우는 데 쓴다. OECD 국가 평균의 1.5배 수준이다. 또 우리 국민이 연간 영어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15조원)은 일본(5조원)의 3배다. 인구를 감안하면, 1인당 영어 사교육비가 일본의 약 7배에 달하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영어 교육은 기본부터 부실투성이다. 중·고교 영어 수업 중 영어 회화나 작문에 쓰이는 시간은 15% 미만이고, 나머지 85%는 여전히 독해와 문법 위주의 ‘수능 대비’ 공부다. 대학에서도 4년 내내 ‘영어 공부’가 아니라 토플·토익 같은 ‘영어 시험공부’를 한다.

영어 교사들이 ‘영어가 안 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2005년 영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영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토익(TOEIC) 시험을 치러보니 평균 718점에 그쳤다. 대기업 신입사원(778점)이나 공기업 합격자 평균점수(841점)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신경우 전남대 교수(영문학과)는 “대학의 영어 관련학과들마저 ‘영어’보다 ‘영어 이론’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서울 유명 대학의 영어관련학과 개설 수업 중 실용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에 불과하다.

◆영어 상용화가 대안

뒤떨어진 영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중앙대 신동일 교수(영어영문과)는 “항상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영어 경쟁력이 높은 나라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택하고 있는 방법이다.

IMD의 외국어 구사 능력과 토플 평균 점수 세계 1위인 덴마크는 초등학교 4학년(10세) 때부터 영어 교육이 시작된다. 영어 수업뿐 아니라 다른 교과 시간에도 영어교재를 활용하는 등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는 교육을 받는다.

스웨덴에서는 전체 방송 프로그램의 25~50%가 영어로 이뤄진다. 청소년들이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게 된다. 대학에서는 수업과 연구를 영어로 진행하고 전체 석·박사학위 논문의 78%가 영어로 쓰인다.

아시아 최고의 영어 경쟁력을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1956년부터 행정부와 금융기관, 대기업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도록 했다. 1987년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영어 사용을 의무화해 975년 27%에 불과했던 영어 구사 인구를 지금은 80%까지 끌어올렸다. 국내에서도 이런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연세대는 2002년 학생회관에 ‘글로벌라운지’를 만들어 이곳에선 영어만 쓰도록 했다. 고려대는 2010년까지 전체 강의의 60%를 영어로 할 계획이다. LG전자는 2008년부터 사내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로 했다. 송도국제도시에서는 행정기관과 금융기관이 우리말과 영어를 같이 쓸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원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영어의 상용화(常用化) 전략은 10년 후를 내다보는 선행 투자”라며 “심각성을 인식하고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