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창조적 파괴의 시기
작성자 권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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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307 등록일 2009/3/7 (21:40)
[Weekly Biz] 21세기 케인스는 어디 있나 정부 역할 강화론으로 1930년대 대공황 구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 창출
기업 투자 유도해야 현재의 글로벌 위기도 해결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금융위기의 충격이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이후 전 세계 실물경제의 침체 속도는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여서 1930년대 대공황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런 심각한 불황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은 무엇일까? 대공황 당시의 경험이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공황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터득한 해답은 정부의 역할이다. 대공황 이전의 경제는 자유방임경제였다. 민간부문의 왕성한 소비와 투자활동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번성했다. 제품은 만들면 팔려나갔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자만심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생산 과잉이 대규모로 발생한 것이다. 기업들이 무너지고 실업이 급증하면서 투자와 소비 등 유효 수요는 위축되어 공급 과잉은 더욱 확대되었다. 자본주의경제는 자생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 자본주의경제를 구제한 것이 케인스(J.M. Keynes)의 처방이었다. 케인스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간부문에서 더 이상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때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 내는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재정기능을 십분 활용한 뉴딜정책을 수행해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세계경제 상황은 대공황 당시와 흡사한 면이 많다. 세계경제는 지난 수십년간의 신자유주의적 질서하에서 전대미문의 과잉유동성과 세계적인 무역불균형(global imbalance)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과잉 성장을 한 것이 결국 작금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낳고 말았다. 이제 민간부문의 위축이 심각해 자생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증세가 비슷하면 처방전 역시 비슷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정부의 역할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깨달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미국 은행들이 파산 지경에 이르면서도 국유화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나, 재정 확대를 통한 적극적인 경기부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정부 역할 확대에 대해 여전히 반감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부문의 역할에 대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한 예로 한국의 경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규모도 파격적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황 탈출의 근본적인 해답은 역시 민간부문이 쥐고 있다. 정부부문이 민간부문의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완해 경제를 회생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계속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는 없다. 결국 민간부문에서 자생적인 유효수요 창출, 특히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활동이 재개되어야 불황으로부터 근본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활력이 어떻게 하면 되살아날 수 있을까? 답은 민간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가 만들어지느냐, 그리고 만들어진 기회를 기업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황기는 기업들에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다. 대공황을 포함해 과거 불황의 시기를 보면 그 기간에 많은 기업들이 명멸(明滅)하는 공통된 현상이 목도된다. 위기의 시기에 멸(滅)하는 기업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치고 새롭게 부상하는 기업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의 자동차회사는 300여개에서 5개로 재편되었고,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과정에서 국내 30대 그룹의 절반이 몰락하는 가운데서도 세계 일류의 글로벌 기업들이 탄생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실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극도의 불황기에는 기업과 산업의 재편이 불가피하게 나타나게 된다. 시장을 주도하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지게 되고 이는 평상시 같으면 엄두도 못 낼 기업들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초우량기업이라 하더라도 위기상황에 대응해 스스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반면에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하는 기업은 새로운 주도기업으로 성장한다.

따라서 이런 위기의 시기에 첫번째 목표는 생존이지만 두번째 목표는 퀀텀점프(quantum jump)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슘페터(J.A.Schumpeter)가 말했듯이 기존의 것을 버리는 '창조적 파괴'의 정신이 필요하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창조적 파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경제는 불황의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도약할 수 있는 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역할을 십분 활용해 경기 부양에 성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 파괴를 효율적으로 유도해내는 경제가 이번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대공황기 케인스와 슘페터가 던진 메시지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입력 : 2009.02.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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