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국 정치에서 기독교는 무엇인가 작성자 JON MEACHAM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6525 등록일 2006/5/5 (13:7) 미국 정치에서 기독교는 무엇인가 건국의 아버지들은 세속적 자유와 종교의 충돌을 승화시켜 국민 통합 이뤄내 God and the Founders 미국이 치른 첫 번째 싸움은 신앙 때문이었다. 1774년 9월 6일 화요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카펜터스 홀에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였다. 제1차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 참석이 목적이었다. 보스턴 대표로 참석한 변호사 토머스 쿠싱은 각 지역 대표자들에게 먼저 기도한 다음 회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부유한 변호사이자 대농장주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대표 존 루틀리지와 뉴욕 대표 존 제이는 이에 반대했다. 존 애덤스(나중에 제2대 대통령이 됐다)가 부인 애비게일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들의 반대 명분은 “대표자들의 종교적 의견이 상이하므로(성공회·회중주의·장로교 등 대표들의 종파는 다양했다) 한 가지의 기도 방식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정치 발달사 초기에서 그들의 반대는 공적 생활의 세속적 분위기 조성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사정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보스턴 대표 새뮤얼 애덤스가 나섰다. 존 애덤스는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새뮤얼 애덤스씨가 일어나 자신은 고집쟁이가 아니므로, 신앙심과 덕망을 갖추고 이 나라의 친구인 어느 신사분이 주관하는 기도라면 기꺼이 경청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소. 그는 필라델피아에는 처음이었지만 성공회 사제인 두셰이가 그런 인품의 소유자라는 얘기를 들었소. 그래서 그는 두셰이가 내일 아침 회의 때 기도??읽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소.” 존 애덤스는 아홉 단어로 된 평서문으로 그 결과를 기록했다. “그가 제시한 동의안은 재청을 거쳐 통과됐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미국의 ‘공식 종교’라고 말한 기도 의식(儀式)은 그렇게 탄생했다. 다음날 아침 두셰이는 성직복을 입고 나타났다. 우연하게도 그날 성공회 측에서 읽을 예정인 성경 구절은 시편 35장이었다. 당시 대표들은 영국군이 보스턴을 공격 중이라는 소문(나중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을 들은 터였다. 모두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듯했다. 대륙군이 세계 최강인 대영제국 군대의 공격을 받는 양상이었다. 카펜터스 홀에서 두셰이는 시편을 읽었다. “주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 존 애덤스는 놀라운 감동을 받았다. 애비게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청중을 그토록 감동시킨 연설은 처음 들었소. 마치 그날 아침 그 시편 구절을 읽으라고 하늘이 정해놓은 듯했소”라고 썼다. 애덤스는 그 순간의 느낌과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비좁은 회의실에서 대표자들은 북쪽에서 영국군과 싸우는 애국투사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두셰이의 시편 구절을 되뇌며 자유를 향한 싸움에서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했다. 시작이 그러했듯이, 그 뒤로도 그랬다. 미국인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하느님을 인정하는 기본 인식은 그렇게 확립됐다. 사람은 선의로써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되 (타종파에) 관대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의 역사를 기도로 시작해야 할지 여부로 토론을 벌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그들의 다툼은 오늘날 우리의 다툼이고, 그들의 갈등은 우리의 갈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신앙심이 깊었지만, 많은 나라에서 종교 전쟁이 오랫동안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해왔음을 알았다. 따라서 그들이 맞서 싸우는 기존 세계의 잘못된 전철을 답습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기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2세기 넘게 유월절을 준수하고 부활절을 기념해왔지만, 공적 생활에서 신앙의 역할은 여전히 열띤 논쟁의 주제다. 줄기세포와 과학에서부터 대법원까지, 외교정책과 2008년 대선에서부터 복음주의적 ‘정의 주일’(Justice Sunday)까지, 하느님과 종교의 문제는 논쟁의 열기를 고조시켰지만 상호 이해의 빛을 밝히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하느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광신자들(백악관부터 학교 위원회까지)이 미국민의 자유를 상대로 성전을 벌인다고 우려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어쩌면 대다수 사람은 미국이 종교인과 세속주의자들로 양분돼 있어 화합할 가망이 없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희망을 암시해준다. 우리는 이런 싸움을 건국 초기부터 해왔지만 여전히 미국의 실험은 끈기있게 지속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미국이라는 태피스트리(여러 색실로 짠 융단)에서 하나의 색실에 불과하며, 결코 전체 태피스트리가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언급하고 간청하며 기도하는 하느님은 미국이라는 드라마에서 필수적인 등장인물이지만, 결코 ‘하느님 아버지’ 혹은 ‘아브라함의 신’은 아니다. 우파의 주장, 즉 우리는 순수한 기원(起源)에서 일탈한 ‘기독교 국가’이며 기독교적 가치의 회복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희망사항일 뿐이지 역사적 설득력이 없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0년 로드 아일랜드주 뉴포트의 유대인 회중에 보낸 편지에서 미국 정부는 결코 “편협성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말해 유대계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또 트리폴리의 이슬람 국가와 체결한 조약(워싱턴이 착수하고, 존 애덤스가 완료했으며, 1797년 미 상원의 비준을 받았다)에서 우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미합중국 정부는 어떤 의미에서도 기독교를 기반으로 건국된 나라가 아니며….” 건국의 아버지들은 또 국민의 종교가 훨씬 더 다양해지리라고 예견했다. 토머스 제퍼슨이 버지니아주 의회에 제출한 종교적 자유를 규정한 법안은 “유대교도와 비유대교도, 기독교도와 마호메트교, 힌두교도와 온갖 이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실제로 그렇게 했고, 이는 하느님 혹은 건국의 아버지들 덕분이다. 과거를 이해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공공 영역에서 신앙이 쟁점이 되면 세속주의자들은 반사적으로 제퍼슨의 ‘정교분리 장벽’을 언급한다. 논쟁은 그 장벽 앞에서 끝나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반면 많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정치 개입을 옹호한다. 마치 워싱턴·애덤스·제퍼슨·프랭클린이 활기찬 기독교 병사였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종교가 최근에야 정치 세력이 됐다는 주장은 사실(史實)에 반하는 무지한 얘기다. 실제로 ‘정교분리 장벽’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또 건국의 아버지들을 반바지 차림의 전도사로 묘사하는 보수파 신자들의 태도 역시 잘못됐다.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희소식(미국의 복음이라고나 할까)이 있다면, 종교가 국가의 생명을 질식시키지 않고 오히려 발현시킨다는 점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신의 섭리를 믿었고, 또 인간이 잘못을 범하기 쉬운 존재임을 알았다. 그래서 특정 종교에 이익이나 손해를 주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다. 신성한 기원과 섭리를 환기시키는 독립선언문의 약속과, 극단주의를 제어하는 헌법의 실제성 사이에는 균형이 존재했고, 그 균형은 미국적인 성공의 가장 빛나는 사례로 남아 있다. 건국의 아버지들과 역대 대통령들은 하늘과 땅을 창조한 하느님을 믿어왔다. 인류에 당신을 믿거나 믿지 않을 자유,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자유, 순종하거나 순종하지 않을 자유를 부여한 하느님을 믿어왔다. 그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자유의지를 부여했는데, 강요된 사랑은 결코 사랑이 아니며 굴종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모든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독립전쟁, 노예제 폐지, 여권 신장, 테러·독재와의 전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반인종차별주의 투쟁 등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역사는 부분적으로는 자유·정의·사랑에 관한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과 성경은 피부색에 근거해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등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정당화하는 데도 이용돼왔다. 그러나 제퍼슨이 쓴 독립선언문은 미국의 가장 근본적인 인권의 토대를 “자연의 신”(Nature’s God)의 선물이라며 신성한 영역에다 두었다. 매우 비전통적인 신앙인이었던 제퍼슨은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는 복음서에서 자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을 면도날로 잘라낸 적도 있다(그는 “내가 아는 한, 나는 독불장군식 교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함께 자유도 주었다”고 믿었다. 그에게 “창조주”는 우리 개개인에게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은 종파적(특히 기독교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언행을 한사코 거부했다.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신은 크게 보아, 계몽주의 시대의 신성 개념인 이신론(理神論)이다. 그런 개념에서 신은 섭리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창조주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나라가 신에 의지한다며 헌법 서문을 바꿔 쓰려는 시도를 거부했다. 그리고 링컨 행정부 이후의 역대 대통령과 의회는 예수를 “모든 나라의 통치자”로 규정한 “기독교계의 수정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건국 초기의 미국 지도자들은 철저한 세속주의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신의 존재를 원했지만,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위해서였다. 그들은 정치인·철학자·현인·전사·성직자·회의론자들이었다. 제퍼슨이 면도날로 복음서를 편집하는 동안, 프랭클린은 주기도문을 18세기 당시의 언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신앙심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필라델피아에 간 첫날, 퀘이커 교도 집회 장소에서 잠들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대다수는 노예를 소유했다. 모두 고결함을 강조했지만, 다수는 복잡한(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죄악인) 사생활을 영위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신정(神政)을 폭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종교가 공적 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리라고(혹은 배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워싱턴은 대통령 취임식 말미에 “그러니 저를 도와 주소서, 하느님”하고 즉석기도를 하고는 취임서약을 한 성서에 입을 맞췄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북부 연방군이 앤티텀에서 승리하면 노예를 해방시키겠다고 “나의 창조주”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노예해방령을 선포했다고 각료들에게 개인적으로 털어놓았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1944년 D-데이 때 발표한 유일한 공개성명은 1928년도 성공회의 공도문(공동 기도문)에다 자신이 연필로 써놓은 기도문을 읽은 것이다. 존 F 케네디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사업은 곧 우리 자신의 사업”이라고 했고, 또 로널드 레이건은 세상은 빛과 어둠의 싸움이며 소련제국은 “현대 세계에서 악의 중심”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조지 W 부시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자신을 방황과 음주의 삶에서 구해 주었으며, 그리스도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종파적 언어는 위험할 때도 있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이 대륙군을 지휘하려고 필라델피아를 떠나던 날, 한 성공회 사제는 이렇게 설교했다. “종교와 자유는 미국에서 함께 번성하거나, 아니면 함께 몰락한다. 우리는 둘 다 영원하도록 기도한다.” 신앙과 자유를 지키려는 투쟁은 오래 지속돼왔고, 지금도 맹렬히 진행 중이다. 종교와 정치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링컨이 “인간 본성 중 더 착한 천사들”이라고 부른 그 무엇을 불러낼 최고의 기회는 건국 시기의 진정한 뜻과 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그것은 건국의 지도자들이 품었던 이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정신이야말로 시련의 시대에 불완전하나마,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최악의 경험들을 피하도록 해준 도덕적인 신조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역사 속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장병걸·이기동 cbg58@joongang.co.kr JON MEACHA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