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국의 두 얼굴 작성자 김병주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2533 등록일 2006/5/9 (13:12) 미국의 두 얼굴 김병주 칼럼 8월 10일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Unocal)은 주주총회에서 셰브론(Chevron)의 합병제의를 승인했다. 합병조건은 현금과 주식교환을 합쳐 주당 63달러였다. 이것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제시했던 주당 67달러(전액 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자유경쟁시장의 본거지인 미국에서 매수가격이 낮은 쪽이 높은 쪽을 물리친 데에는 중국의 부상을 경계하는 미국 조야의 정치논리가 작용했다. 올해 들어 세인의 이목을 끌었던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작전 세 건 가운데 성공한 것은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한 롄샹(레노보)이 올린 한 건뿐이다. 하이얼(海爾)이 인수에 나섰던 메이택(Maytag)은 월풀(Whirlpool)이 선수를 쳐 흡수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미국 내에서 반대여론이 거셌던 유노칼 건은 고유가 시대에 에너지 부문 기업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국가안보의 문제라고 주장한 워싱턴의 정치 논리 때문에 무산됐다. 지난번 본란에서 예견했듯이 막판이 가까워지면서 CNOOC와 셰브론 양측의 값 올리기 기세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8월 2일 일찌감치 CNOOC가 전격적으로 인수전에서 물러섰다. 어찌 된 사연인가.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셰브론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한 선거구 출신 국회의원 리처드 폼보(Richard Pombo)가 중심인물이었다. 셰브론과 관계가 돈독한 그는 중국 기업의 유노칼 인수는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한편 의회 내 반(反)중국 여론몰이에 앞장섰다. 그렇지 않아도 반중국 정서에 물든 워싱턴 정가에 때마침 CNOOC에 대한 성토가 메마른 들판의 불처럼 번져 나갔다. 왜 CNOOC가 유노칼의 주총일까지 마지막 승부를 걸고 버티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9월 방미를 앞두고 미국 정가를 자극하지 말자는 베이징(北京)의 계산이 깔렸을 것이라는 설이다. CNOOC가 국영기업이니 그럴싸하게 들린다. 다음은 베이징의 계산으로는 그간의 진행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견해다. 앞으로 미국 기업이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에 나설 경우 중국정부가 보복조치를 취해도 미국정부가 할 말을 가로막을 선례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중국의 전략변경을 거론하는 측도 있다. 외국의 영토 또는 영해에 있는 에너지원을 확보해놔도 정작 긴급상황이 발발할 경우 이용할 수 없는 사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영해 내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미 800여 공을 시추한 지역에서 1만 개를 더 뚫을 것이다. 한편 채산성이 의심되는 해외유전 개발에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중국이 중앙아시아 소재 독재정권들과의 관계 심화에 나설 것이므로 미국이 불리하게 될 것이라며 후회하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됐건 한국의 국내 정치?경제 사정과 관계없이 세계 각국의 자원확보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자유경쟁과 시장개방을 주장해온 미국의 얼굴에 큰 손상을 입게 됐다는 사실이다. 타국의 시장개방을 요구할 때의 미국 주장과 타국이 자국시장에 진입할 때의 미국 입장이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진상이다. 타국을 ‘평등한 운동경기장(level playing field)’이라고 말해왔던 미국이 자국 내 경기에서는 분명한 파울을 범하고 말았다. 미국 의회는 상처투성이의 승리를 거두었다. 유노칼은 셰브론의 일부로 미국인의 손에 남아 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갈 것이다. 하기야 다른 나라도 뮈幷?아니다. 예컨대 얼마 전 펩시콜라가 다농(Danone)의 음료수 부문에 눈독을 들인다는 소문에 대통령?총리를 비롯해 프랑스 조야가 발칵 뒤집어졌다. 미국 기업이 감히 프랑스의 챔피언 기업을 넘본다는 것이었다. 유노칼은 미국의 대표기업이 아니라 시장점유율 1% 미만의 소기업이었으니 미국의 처사는 자유시장경제의 대표국답지 못한 옹졸한 짓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베이징 정부가 도덕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됐다. 조만간 일본을 제외한 달러화 최대보유국으로 등장할 중국의 입김과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게 됐다. 향후 세계경제의 최대 과제는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유일의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 아직 마음을 정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한국은 양국관계의 향배를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정쟁을 접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