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간 무의식을 파고든 과학자 작성자 NEWSWEEK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2726 등록일 2006/5/9 (14:21) 인간 무의식을 파고든 과학자 생물학의 과학적 탐구에 한계 느낀 뒤 심리학에 몰두 The Therapist As Scientist 1876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과학의 길에 막 들어서던 시기였다. 이드, 에고, 수퍼에고? 그런 말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20세 생일 무렵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있는 빈 대학 동물연구소를 찾아갈 무렵 이 젊은 의학도는 훨씬 덜 난해한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 바로 뱀장어의 정소(精巢)를 찾는 일이었다. 지난 수천 년간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비밀스러운 뱀장어의 짝짓기 습성을 알아내겠다고 골머리를 앓았다. 프로이트가 이 비밀을 푸는 일이 가능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뱀장어 400마리를 해부한 뒤에도 생식기 구조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최초의 과학 논문을 쓰기에 충분한 자료를 얻었다. ‘고환으로 추정되는 뱀장어 소엽(小葉)기관의 형태와 미세구조에 관한 연구’란 논문이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안하기 오래전 프로이트는 철두철미한 과학자였다. 초기 연구 대상은 뱀장어의 생식선(生殖線)이었다. 나중엔 인간의 뇌세포 구조를 연구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과학적 탐구엔 한계가 있었다[당시엔 뇌 단층촬영장치가 발명되지 않았고, 디옥시리보핵산(DNA)도 그의 생전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결국 생물학을 포기하고 심리학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제 신경과학자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꿈꾸게 하는 분자 수준의 통로를 규명하면서 프로이트 이론이 뿌린 씨앗도 연구실로 옮아갔다. 연구자들은 억압이론을 탐구하고, 외상성 기억을 차단할 방법을 연구하는 등 무의식의 작동원리를 연구 중이다. 연구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이 프로이트의 옳고 그름을 반드시 증명해주진 못한다. 자기공명단층촬영(MRI)으론 미묘한 인간 정서를 측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분야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 신경과학(뇌 연구)과 정신분석(정신 연구)으로 양분돼 있던 두 분야가 마침내 서로 공통분모를 찾기 시작했다. 하버드 매클린병원 원장인 잭 고먼 박사는 프로이트도 이런 추세에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한다. “그가 살아 있다면 우리와 공동으로 실험에 참가했을 것이다.” 프로鉗??과학에의 관심은 실험실에서 폭발했다. 그는 뱀장어에 이어 칠성장어와 민물새우의 신경계통을 연구했고, 심지어 살아있는 세포의 미세한 부분들을 현미경으로 보다 선명하게 관찰하려고 기발한 착색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1880년대 초엔 이미 인간의 뇌간(腦幹)을 연구했다. 프로이트는 훌륭한 도안을 통해 척수의 신경·근육세포 구조를 상세히 그렸다(이 도안들은 5월 뉴욕의학아카데미 주최로 전시될 예정이다). 과학은 프로이트에게 연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1885년 5월 약혼녀 마르타 베르네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그대여, 지금 이 순간 나는 뇌 구조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오. 뇌 해부학이야말로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에게 필적할 만한 유일한 경쟁자라 생각하오.” 그러나 뇌 해부만으론 프로이트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돈벌이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런던 국제신경정신분석센터(INPC)의 마크 솔름스 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살아있는 환자들도 “마지못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뇌출혈과 척수염 환자들을 진료했다. 뇌성마비와 뇌손상으로 발병한 실어증을 연구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파리에 있는 신경학자 장-마르텡 샤르코와 공동 연구를 한 뒤엔 포괄적으로 히스테리라고 일컫는 증세를 보이는 성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환각이나 일시적 실명처럼 당시로선 똑 부러지게 설명이 안 되는 증세였다. “이 연구를 계기로 프로이트는 정신에 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캘리포니아대(LA)의 정신분석학자 레지나 팰리 박사는 말했다. “환자들과의 상담을 통해 그는 그들이 겪는 정서적 갈등이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로이트는 보다 큰 무엇(무의식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뇌과학은 비교적 초보 단계였고, 정신에 관한 문제는 주로 철학자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생각은 달랐다. 뇌는 “각 부분들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곳”이지, “기능이 제각각인 부분들이 한데 모인 스위치 보드가 아니다”고 생각했다고 솔름스 소장은 말했다. 1895년 ‘과학적인 심리학 프로젝트’라는 논문을 통해 프로이트는 뇌와 정신의 통합적 모델을 제시하려 했다. 수십 쪽에 이르는 주석을 통해 그는 정신적 추리의 생물학적 뿌리를 연구하는 한편 의식·기억·인식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뉴런)를 설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 수준으론 불가능한 일이었고, 프로이트는 결국 그 작업을 포기했다(논문도 그가 사망한 뒤에 출간됐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적 과정의 작동원리에 관해 대단한 선경지명이 있었다”고 컬럼비아대의 에릭 칸델 박사는 말했다. “그는 뉴런이 뇌를 구성하며, 학습을 통해 뉴런들 간의 상호작용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수립했다.”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프로이트가 포기한 부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뇌 단층촬영을 통해 꿈은 어디서 기인하며, 스트레스가 신경전달물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정신의 작용 과정을 관찰한다. 예컨대 칸델은 컬럼비아대 동료들과 함께 기능자기공명단층촬영(fMRI) 기술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무서운 얼굴의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면서 뇌 속 움직임을 추적했다. 참가 학생들은 그런 사진들을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지만 촬영 결과는 달랐다. 공포를 인지하는 곳인 편도(扁挑)가 자극을 받아 밝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 중 하나였다”고 고먼 박사는 말했다. 뇌가 원치 않는 기억을 억압할까? 이를 실험실에서 입증하는 일도 가능할까? 비판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리건대의 심리학자 마이클 앤더슨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의도적 망각 작용”의 신경학적 증거를 찾아내려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앤더슨은 사람들에게 ‘시련’ ‘바퀴벌레’ 등 서로 무관한 단어의 조합을 암기하도록 훈련시켰다. 그런 다음 이들을 fMRI에 연결한 뒤 두 번째 단어는 생각하지 말고 첫 번째 단어를 보면서 자신의 기억을 억제해 보라고 요구했다. 단층촬영은 흥미로운 회로가 작동 중임을 보여주었다. 뇌 양측의 전전두엽(前前頭葉) 피질(뜨거운 접시에 손이 닿으면 얼른 뒤로 빼는 등의 반사작용을 억제하는 부분)은 활동이 더 활발해진 반면 해마(기억을 되살려 주는 부분)의 활동은 줄어들었다. 적극적인 억제는 자신의 기억을 나중에 되살리는 일도 어렵게 만들었다. 단어로만 표현된 ‘바퀴벌레’의 기억을 억제하는 일과 실제의 바퀴벌레로 인한 끔찍한 경험을 잊는 일은 큰 차이가 있지만 앤더슨은 여기서도 똑같은 정신적 기제가 작용한다고 믿는다. “나는 프로이트가 뭔가를 찾아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쾌락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억누르려 할 때 키捐막恝?나타나는 변화를 밝히는데도 뇌 영상을 이용한다. 이들은 초기에 겪은 악몽과 이것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연구 중이다. 심지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들이 나쁜 기억을 의도적으로 억누르는 일이 가능한지 알아보려 약물 실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정신분석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에 관한 해답을 제공하진 못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매우 은밀한 치료법의 검증을 꺼렸고, 풀어야 할 과제도 매우 엄청나다. 개인 간의 경험이 그토록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결과들”에 관한 일괄적 평가가 가능하냐는 문제다. 그러나 현재 300명이 넘는 환자를 상대로 여러 곳에서 실험을 실시 중인 컬럼비아대 심리분석훈련센터의 스티븐 루즈 박사는 “우린 이 일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에선 정신분석을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치료법(인지행동 정신요법과 역동 정신요법)과 비교하려고 표준척도를 사용할 작정이다. “임상의학계에서 우리의 입지를 유지하려면 우리의 치료법이 효과적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 그렇다면 소파에 느긋이 앉아 기다려 보자. 이기동 newsweek@joongang.co.kr CLAUDIA KAL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