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제정치경제학 강의(1~5)
작성자 홍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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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392 등록일 2006/10/6 (23:30)
2020년 이 땅에서 벌어질 일을 살펴보니…  
 [한미FTA 뜯어보기 106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 '새장 속의 새'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단순한 '무역자유화 협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경제통합 협정'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며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한국이 더 깊숙이 포섭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우려를 하는 이들은 예를 들어 '자동차 수출에는 플러스, 농업에는 마이너스'하는 식으로 부문별로 경제적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것만으로는 한미 FTA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정부의 한미 FTA 추진 태도를 비판해 온 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홍기빈 씨는 "FTA는 포괄적인 지구정치경제(global political economy)의 틀에서 그 성격을 파악해야 하는, 지구적 자본의 21세기형 전략"이며 "따라서 한미 FTA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어떤 모습의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정치, 사회, 문화, 외교에 걸쳐 포괄적으로 반성하여 판단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홍기빈 씨는 한미 FTA의 지구정치경제적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도(investor-state claim)'라면서 이 제도의 역사적 내력과 그 구체적인 적용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들에 대해 심층 분석한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해 왔다.
 
 한미 FTA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홍기빈 씨의 이 글을 오늘부터 10여 회로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
 
 노무현 정부는 기어코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2008년 1월 1일을 기해 발효시켰다. 2년 뒤인 2010년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은 한국의 서울방송을 접수하기 위한 공작을 시작한다.
 
 루퍼트 머독이 엄청난 크기와 발전 가능성을 가진 중국 등 아시아의 미디어 및 광고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1990년대부터 동분서주해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와 방송이라는 예민한 부문을 둘러싼 각종 규제와 장벽으로 인해 그의 아시아 진출이 그다지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시아 문화권에서 상당한 위력을 가진 한류 대중문화의 발원지인 한국이 한미 FTA를 통해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미국과 동일한 사업조건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시아 진출의 안정된 발판을 바라는 그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머독이 움직이기 시작하다
 
 하지만 한미 FTA가 머독에게 무엇이나 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갖추어준 것은 아니었다. FTA 체결 과정에서 방송계와 방송노동자들의 반대, 그리고 국내 문화 인프라의 붕괴를 우려한 국민여론으로 인해 몇 가지 장벽들은 남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외국인 소유의 회사는 한국의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을 직접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였다. 그래서 머독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서울방송은 소유구조의 일대 변화를 겪고 있었다. '방송설립 허가'라는 무형자산은 노종현이라는 이가 사장으로 있는 '열린나라'라는 법인이 보유하고 있었다. 머독은 재빨리 노종현과 접촉하고 작전을 짠다. 먼저 머독은 한국과 투자협정을 맺고 있는 싱가포르에 '범아시아 미디어사업단(Pan-Asian Media Enterprise: PAME)'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PAME는 거액의 자본을 투자해, 방송설립 허가를 갖고 있는 '열린나라'와 함께 '새서울방송'이라는 회사를 새로 설립하고 그 지분을 8대2로 나눠 갖는다.
 
 노종현은 머독에게 융통한 거액의 자금으로 '열린나라'의 지분을 대폭 늘려 지배주주가 됐다. 그 조건은 노종현이 자신의 지분을 이용해 '열린나라'가 '새서울방송'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항상 머독과 PAME의 뜻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머독과 PAME는 '새서울방송'의 사실상의 소유주가 되고 노종현은 그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 이후 '새서울방송'은 머독의 폭스TV를 벤치마크해 파격적인 프로그램 편성과 기획으로 방송계 구도를 뒤흔든다.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강도 높은 폭력과 섹스를 담은 선정적 프로를 수입해 방영하거나 이런 것들을 모델로 국내에서 자체 제작한 프로와 시트콤을 저녁시간에 전면 배치한다. 또 이미 한국의 지배적인 문화코드가 된 미국식 생활과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토크쇼나 오락물을 영어해설과 덧붙여 방영한다. 교양물도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은 주로 비행접시나 '체험! 원조교제'와 같은 선정적인 화젯거리 위주다. 뉴스 프로에 대한 시간배분은 줄이고 여론몰이에 유리한 쟁점들을 집중 보도해 사회적 담론에 대한 파괴적 영향력을 높인다.
 
 이러한 공격적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어 광고시장에서도 '새서울방송'은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매 분기마다 당기순이익의 기록적인 신장이 이루어지고, 그 돈은 PAME를 통해 머독의 손으로 들어간다. 머독은 한국 방송시장에서 거둔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해서 미국식과 적절히 '퓨전'된 한국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신한류(NEO 韓流)'로 포장해 아시아 시장으로 힘을 확장한다. 나스닥에 상장한 PAME 주식의 시세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며 치솟고, 머지않아 PAME는 아시아 전체의 매체 및 광고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평판을 얻는다.
 
 '새서울방송'은 선정적인 매체뿐 아니라 저명한 계간지나 유수한 일간지는 물론 인터넷 포털도 소유하고 출판사와 음반사, 미술관까지 거느린 미디어 복합기업이 되며, 그 최고경영자인 노종현은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권력자로 떠오르게 된다.
 
 물론 비난여론이 들끓는다. 부모들은 진저리를 낸다. 저녁식탁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매일같이 반쯤 벗은 남녀들이 떼거리로 나와 총질, 칼질과 끈적이는 눈짓, 몸짓을 하는 장면을 보아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문화의 정서와 언어의 아름다움이 국적불명의 미국식 문화에 파괴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사회 전체 여론이 '새서울방송'에 의해 마구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한국에서는 이제 언론의 자유와 중립성은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해마다 방송과 광고 시장에서 엄청난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국부유출'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방송위원회가 수도 없이 권고와 경고를 날리지만, 이 '막가는' 초국적 미디어 회사 앞에서는 바퀴 앞 사마귀다. 되레 노종현 사장이 정규 방송시간에 등장해 '새서울방송'에 쏟아지는 온갖 비난이야말로 "이 세계화의 시대에 19세기식 종속이론이나 들먹이는 시대착오"라는 일장연설을 하고, 이런 그의 연설은 전국에 방영된다.
 
 2014년에 노종현 사장은 드디어 문화방송 인수 작업에 착수한다. 문화방송의 최대주주인 KBS는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새서울방송'의 주식을 넘겨받아 일종의 상호출자 구조를 만드는 조건으로 자사가 보유한 문화방송 주식을 대거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사회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이제 한국의 민간 공중파 방송은 모조리 루퍼트 머독과 노종현의 손으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공격의 화살을 정부 쪽으로 돌리다
 
 그러나 노종현 사장의 욱일승천 성공담은 여기까지다. 이때부터는 상황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그 불똥은 어이없게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모조리 뒤집어쓰게 된다.
 
 일개 작은 회사의 경영자였다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사회적 거물로 성장해 거들먹거리게 된 노종현을 머독은 경계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혹시 노종현이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새서울방송'에 대한 경영권과 그 자산을 남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게 머독의 우려였다. 마침내 머독과 PAME는 2015년 '새서울방송'의 주주총회에서 노종현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해고시킨다. 이때부터 노종현과 머독은 만화 '톰과 제리'를 능가하는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노종현은 방송설립 허가라는 무형자산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열린나라'를 새로운 법인으로 등록하고 머독과 PAME가 소유하고 있는 '새서울방송' 법인에서 빠져나와 독자적으로 방송국을 운영해 나간다. 그리고 그 전까지 미국 쪽 콘텐츠나 각종 서비스의 구매처였던 PAME와의 거래를 모두 끊어버린다. 이른바 '내부인수'를 거행한 것이다.
 
 혹을 떼려다 암에 걸린 격이었다. 노종현을 축출하기는커녕 졸지에 방송국을 잃게 된 머독과 PAME는 선불 맞은 멧돼지마냥 이리저리 날뛰며 온갖 공격방법을 생각해낸다. 먼저 한국의 법원에 3조 원 규모의 초대형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노종현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낸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별로 효력이 없을 것이었다. 한국의 법원에서 이미 한국 굴지의 권력자로 큰 노종현에게 3조 원의 돈을 뱉어내라는 배짱 좋은 판결을 할 돈키호테 같은 판사가 과연 있겠는가?
 
 머독은 자신이 아는 워싱턴의 실력자들로 하여금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도록 하는 방법도 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민간 방송사의 소유구조 문제는 정부 소관이 아니라 독립기관인 방송위원회의 관할"이라고 발뺌한다. 머독은 방송위원회로 가서 '새서울방송'의 소유지배 구조를 원상회복시켜달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방송위원회도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발뺌한다.
 
 이때 노종현이 회심의 반격을 한다. 법원의 가처분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노종현은 자신이 보유한 '열린나라' 지분의 대부분을 자신에게 우호적인 여러 사람들에게 분산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되면 법원에서 머독과 PAME가 승리한다 해도 노종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이미 매우 낮아진 뒤이니 예전의 소유지배 구조를 회복시킬 길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노종현이 이렇게 주식 분산을 하려면 방송사 소유구조 감독기관인 방송위원회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노종현은 정교한 논리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방송위원회로 하여금 그러한 재가를 내리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제리'는 이제 무사히 담장 밖으로 넘어간 셈이었다.
 
 고생만 하고 헛물만 켠 '톰'이 되어버린 머독과 PAME는 이제 '제리' 대신 엉뚱하게도 '새장 속의 새'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정부는 이 숨바꼭질에서 머독과 PAME와 같은 외국인 투자자를 전혀 보호하지 않고 은근히 노종현의 책략을 방기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것은 명백히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행동이며, 그 결과로 PAME의 자산은 가치가 심각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간접적 수용(indirect expropriation)'에 맞먹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니 그같은 수용에 걸맞는 배상을 할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 머독과 PAME는 이런 논리에서 한미 FTA와 같은 조약에 명기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investor-state claim) 조항을 이용해 한국 정부를 고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머독과 PAME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싱가포르에 자리 잡은 PAME가 한국과 싱가포르 간 FTA를 근거로 국제 중재재판을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머독이 한미 FTA를 근거로 국제 중재재판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머독과 PAME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다. 두 FTA를 근거로 하여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각각 50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 중재기관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비용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길 경우 획득할 수 있는 배상액에 비해서는 소송비용이 큰 것은 아니다. 게다가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에는 중요한 비대칭적인 특징이 있다. 투자자는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지만 국가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없다. 따라서 머독과 PAME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부가 패소하면 큰 돈을 얻게 되지만 설령 자신들이 패소한다고 해도 소송비용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게다가 미국과 싱가포르 두 군데서 제기하는 소송은 각각의 독립된 중재위원회에서 진행하게 되어 있다. 두 마리 말 모두에 판돈을 걸어보는 것이 승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지 않겠는가.
 
 이리하여 2017년, PAME가 한국-싱가포르 FTA에 의거하여 건 소송은 제네바에서, 머독이 한미 FTA에 의거해 건 소송은 런던에서 각각 별개의 국제 중재재판단에 의해 진행되기 시작한다.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를 명시한 FTA를 체결해 놓은 한국 정부는 손발이 묶인 '새장 속의 새'의 입장이어서 꼼짝없이 제네바와 런던으로 끌려 나가 고양이의 발톱과 이빨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1000만 달러에 가까운 소송비용을 써가면서 소송에 대응하고 나선다.
 
 머독도 얌전히 앉아서 판결을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다. 지구적 미디어 황제라는 자신의 위치가 주는 힘을 이용해 온갖 방법으로 한국이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를 선전하고, 절대 한국에는 투자하지 말라는 국제적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그 영향으로 국제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한 큰 규모의 투자계획들을 보류시킨 채 판결의 추이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고양이뿐 아니라 승냥이, 호랑이도
 
 중재재판이 몇 년에 걸쳐 이어지더니 판결이 나오기 시작한다. 먼저 2019년에 나온 런던에서의 판결은 머독의 완패다. 머독이 주장한 자신의 부당한 피해란 대부분 근거가 없으며, 한국 정부는 아무런 배상책임도 없다는 것이 심판관들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20년에 제네바에서 폭탄이 날아온다. 제네바 국제 중재재판에서는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한국 정부가 PAME에 35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충격에 휩싸인다. 머독과 노종현이 벌인 숨바꼭질의 뒷감당이 모조리 정부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연간 4조 원가량의 적자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제 적자가 졸지에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나 버렸다. 하지만 여의도와 청와대의 공통된 의견은 군말 없이 배상금을 어떻게든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머독의 공작 탓에 불안해진 국제 투자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를 더 이상 악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외통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국제적 평판'의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조속한 시일 내에 전액을 배상하겠다는 입장을 내외에 천명한다.
 
 문제는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다. 머리를 맞대보지만 쉬운 답은 없다. 배상금 지급이 늦어질수록 이자비용은 커질 것이고, 국가신인도도 문제다. 결국 정부와 여당은 부가가치세율을 일시적으로라도 올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부담이 고스란히 한국 국민들 전체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PAME의 성공담은 그간 십몇 년 동안 한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는 다른 국제자본들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북소리이자 춤사위였다. 꽤 오래 전에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다가 '정부기관의 횡포'로 인해 실패한 바 있는 미국의 투기자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머독의 소송보다 몇 배나 되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한국전력을 탐내다가 물러났던 일본 금융회사로부터 한국이동통신을 노리던 핀란드 회사까지 줄줄이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를 활용해 한국 정부로부터 모두 수십조 원을 뜯어갈 전략을 세운다. 이제 '새장 속의 새'는 제네바로, 스톡홀름으로 불려 다니면서 고양이뿐 아니라 승냥이, 호랑이의 공격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연재의 첫 글에 웬 느닷없는 가상소설이냐고 불쾌해 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음 회의 글을 읽으면 그런 불쾌감은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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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체코에서 있었던 일이 '남의 일'일까?  
 [한미FTA 뜯어보기 107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2)] 노바TV  


 
 이번에는 2003년에 체코 공화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자. 앞글(1회)의 표현과 어투는 물론 그 내용까지 이번 글에 반복된다는 점에 대해 미리 용서를 빈다. 앞글은 가상의 상황에 대한 것이고 이번 글은 실제 상황에 대한 것이긴 하지만, 두 상황의 대칭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필자의 무딘 글 솜씨만 탓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미국인 로널드 라우더와 체코의 노바TV
 
 1990년대 초에 공산주의 체제가 종식된 이후 새로이 나라 건설을 하느라 바쁜 체코 공화국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분야 모두에 대해 민영 방송국 설립을 허가하기로 결정하고, 한정된 수의 방송국 설립허가를 따기를 원하는 민간 지원자들을 모집한다. 체코인인 블라디미르 젤레즈니(Vladimir Zelezny)는 이 기회를 활용해 체코의 지식인들 몇 명과 함께 CET21이라는 작은 회사를 만들어 텔레비전 방송국 설립허가를 따낸다.
 
 한편 미국의 화장품 재벌이자 공산주의 몰락 이후 새롭게 열리기 시작한 중유럽 나라들의 방송과 매체 시장 진출을 노리고 '중유럽 미디어(Central European Media Enterprise: CME)'라는 회사를 설립한 미국인 로널드 라우더(Ronald Lauder)는 재빠르게 1993년에 젤레즈니와 접촉했다. 중유럽 전체로 도약할 발판을 체코 공화국에 마련할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라우더는 흥정에 성공했다. 그는 TV 방송국 설립에 필요한 자본을 댔고, 그 돈으로 젤레즈니는 방송 설립허가를 무형자산으로 갖고 있는 CET21에 대한 지분을 늘려 이 회사를 완전히 자기소유로 만든다. 그 대신 젤레즈니는 자신의 지분에서 나오는 의결권을 항상 라우더의 회사인 CME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사하기로 약조했다. 이리하여 체코 최초의 민영 영어 텔레비전 방송인 '노바TV(TV Nova)'가 생겨났다.
 
 노바TV를 운영하는 회사인 CNTS(Ceska Nezavisia Televizni Spolecnost)의 지배소유구조는 약간 복잡하게 되어 있었다. 라우더의 CME가 압도적 지분(2000년 당시 93%)을 갖고 있었고, 그 나머지인 약간의 지분을 CET21과 체코의 한 은행이 나누어 갖고 있었다. CET21의 경우는 지분 중 60% 이상을 젤레즈니가 가지고 있었고 그는 명시적으로 CME에 절대적 충성을 서약한 바 있기에 사실상 이 회사 전체가 라우더와 그의 회사 CME의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젤레즈니는 CNTS의 CEO가 된다.
 
 그 뒤 노바TV의 행보는 극적인 성공과 극도의 비난이 엇갈리는 과정이었다. 노바TV는 체코 방송위원회 등의 규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미국식 오락프로와 섹스 및 폭력물 등으로 공격적인 편성을 하는가 하면 뉴스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의 제작과 편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사업상의 이익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CME가 미국 나스닥에 제출한 회사설명서(prospectus)에는 당연히 언론 편집의 독립성과 공정성 및 공공성을 존중한다고 씌어 있었지만, 이는 실제와 다른 것이었다.
 
 그 결과 1996년이 되면 노바TV는 체코 인구의 70%가 즐겨 시청할 정도가 됐다. 광고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갖게 된 CNTS는 1996년 1~9월 중 노바TV 방송국 운영비용으로는 600만 달러를 지출하는 데 그쳤지만 세전 수익은 7000만 달러나 거두었다(체코 잡지 <튀덴(Tyden)> 1997년 1월 13일자).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CME는 우크라이나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방송시장에도 진출했고, 나스닥에서 CME의 주가는 한없이 치솟았다. 1996년에 <파이낸셜타임스>는 2000년경이 되면 약 30억 달러에 달하게 될 동유럽의 광고시장을 CME가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라우더와 그의 회사 CME의 이러한 성공은 체코 국내에서 큰 반발에 부딪혔다. 엄청난 돈이 국외의 초국적 기업으로 빠져나간다는 것 외에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체코 사회의 문화적 기풍을 정면으로 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체코 방송위원회는 수 차례에 걸쳐 규제를 제대로 지킬 것을 종용했으나 이미 막강한 사회적 권력을 갖게 된 노바TV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되레 정규 방송시간 중에 사장인 젤레즈니가 나와 정부와 관료들을 가리켜 "국부유출이 어쩌고 하는 해묵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하는 대담함을 보인다.
 
 이미 CME는 노바TV 외에도 라디오방송국, 잡지, 신문 등의 매체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적 권력으로 변해 있었다. 1999년 4월에 행해진 여론조사에 의하면 체코 국민들의 40퍼센트는 체코의 언론자유가 사라졌으며, 이런 답변을 한 이들 중 상당수는 그 원인을 매체가 외국인들에 의해 소유돼 있다는 데서 찾았다.
 
 1997년 4월 17일 젤레즈니가 체코 의회에 출석해 CME가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상업 텔레비전 방송인 노바TV를 통해 '프리마TV(Prima TV)'를 인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했을 때 그의 성공신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프리마TV의 대주주인 체코의 국영은행이 노바TV에서 내건 조건에 응함으로써 주식매매에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 직후 체코 의사당에서는 거의 난장판에 가까운 대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발표된 대로라면 체코의 민영 TV 방송은 사실상 CME에 전부 장악당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신한 젤레즈니에 대한 라우더의 역공
 
 그러나 성공담은 여기까지이며, 이후의 이야기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체코 사회에서 일급의 거물로 성장한 젤레즈니가 라우더와 CME를 배신하고 독자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관계가 악화된 라우더와 CME는 1999년 3월에 젤레즈니를 해고해버린다. 하지만 방송국 설립허가를 보유한 회사는 CET21이었고, 이 회사에 대해서는 젤레즈니가 홀로 60%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젤레즈니는 이름만 바꾼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고 독자적으로 계속 노바TV를 운영하는 한편, CME나 CNTS로부터의 서비스 구매를 중단하고 일체의 관계를 끊어버리면서 이른바 '내부인수(internal takeover)'를 거행한다. 졸지에 방송국을 빼앗기게 된 라우더와 CME는 체코 사법기관에 3억 달러 규모의 고소를 하지만, 체코의 재판소가 젤레즈니와 같은 정치적 거물에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부터 라우더와 CME는 아예 체코 정부를 사냥감으로 삼기 시작한다.
 
 라우더와 CME 측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체코 정부는 방송사의 문제는 독립기관인 방송위원회 소관이므로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공언했다. 이에 라우더와 CME는 노바TV의 원래 지배소유구조를 회복시켜 줄 것을 방송위원회에 요청했지만, 방송위원회는 법원에서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노바TV의 일에 휘말릴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사이에 젤레즈니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에게 자신의 보유주식을 이전시켰다.
 
 이런 젤레즈니의 행동은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체코 국내의 법원에서 라우더와 CME가 승리하여 노바TV의 원래 지배소유구조를 회복시키라는 명령을 받아낸다 해도, 젤레즈니의 손에 남은 주식은 이미 극히 소량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젤레즈니의 주식 이전을 방송위원회가 승인하였다는 것이 또 다른 빌미가 되었다. 이제 라우더와 CME는 감독소홀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자로 체코 정부를 몰아세우기로 작정한다.
 
 라우더와 CME는 각종 양자 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ies: BITs)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investor-state claim) 조항에 호소하여 체코 정부를 국제 중재기관으로 끌고 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체코 정부의 감독소홀이 결국 자신들이 체코에 투자한 자산의 가치를 심대하게 훼손했고, 결국 이는 사적 소유물의 '수용(expropriation)'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라우더와 CME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먼저, 1991년 발효된 네덜란드와 체코 사이의 양자 간 투자협정을 이용할 수 있었다. CME는 조세회피지역인 버뮤다와 네덜란드 모두에 기반을 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또 미국과 체코가 1958년에 맺은 조약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CME의 소유자인 로널드 라우더가 미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두 가지 모두를 이용하기로 했다. 즉 라우더와 CME가 각각의 투자협정을 이용하여 따로따로 체코 정부를 상대로 5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기로 한 것이다.
 
 이리하여 로널드 라우더 개인이 시작한 소송의 국제 중재재판이 런던에서, CME가 시작한 소송의 국제 중재재판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각각 시작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로널드 라우더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광고를 실어 체코가 얼마나 투자자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곳인지, 그래서 투자자들이 얼마나 체코를 멀리해야 하는지를 열심히 홍보했다. 하지만 판세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2001년 2월 암스테르담의 국제 중재재판에서 벌어진 CME와 젤레즈니 개인 간 소송에서 CME는 부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 전혀 없으며, 따라서 CME 쪽이 제기한 배상 요구는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곧이어 9월 초 런던에서 벌어진 라우더와 체코 정부 사이의 재판에서도 재판관 만장일치로 체코 정부는 문제된 거의 모든 쟁점에서 책임이 없으며 따라서 배상의 의무도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중재법정의 배상 판결
 
 그런데 2003년 3월에 CME와 체코 정부 간 소송의 스톡홀름 중재재판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스톡홀름 중재법정은 CME가 체코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의해 피해를 입었으며, 따라서 체코 정부는 3억50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는 체코 국내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체코 정부가 이미 두 건의 소송에 100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한 데 이어, 이제는 3억5000만 달러라는 훨씬 더 큰 부담이 정부재정에 얹혔다. 체코는 인구 1000만 명,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의 작은 경제다. 이 나라에서 3억5000만 달러는 나라 전체 의료보험의 1년 예산에 맞먹는 금액이며,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비추면 이는 영국이라면 105억 달러, 독일이라면 140억 달러나 마찬가지인 부담이었다. 게다가 체코 정부는 이미 3억6000만 달러 정도의 기록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졸지에 정부적자가 두 배로 늘어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지불이 늦어질 때는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며, 재정악화로 인한 국가신인도 등의 문제도 불거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체코 정치가들은 군말 없이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배상금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유는? 가뜩이나 라우더의 국제적 캠페인으로 악화된 국제 투자자들 사이에서 체코의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외교장관 키릴 스보보다(Cyril Svoboda)가 말한 대로 '국제적 평판(reputation abroad)'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막대한 돈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논의가 들끓었지만, 정부에서는 각종 부가가치세를 늘리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두 건의 소송 비용으로 나간 돈 외에 라우더와 CME에 갖다 바칠 배상금까지 체코 국민들이 물어내게 된 것이다.
 
 체코 국민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라우더와 CME의 성공담은 수많은 다른 나라의 국제 투자자들로 하여금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를 이용해 체코 정부로부터 큰돈을 뜯어내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있는 일본 노무라 금융법인의 자회사인 살루카 투자(Saluka Investments)는 이미 2000년에 벌어진 'IPB 은행' 파산 과정에서 자신들이 당한 차별을 이유로 10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밖에도 여러 사례들에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CME 사건에 고무되어 체코 정부에 으름장을 놓는 등 기세를 올렸다. 이것이 2003년 체코의 풍경이었다.
 
 이런 체코의 사례는 몇 개의 작은 나라들과의 FTA를 거쳐 이제 미국이라는 경제대국과의 FTA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외국자본에 의한 지배소유구조의 복잡한 변형, 방송의 공공성 파괴, 이로 인한 국내의 사회적 분란과 동아시아 차원의 시장구조 변동…. 하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것들은 굳이 FTA라는 형식적 틀이 없어도 자본의 지구화로 달려가고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이미 마주쳤거나 언젠가는 한 번씩 마주치게 될 문제일지 모른다.
 
 여하튼 앞의 1회와 이번 2회의 이야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반부의 기막힌 반전이다. 초국적 미디어 기업과 지역 및 국내의 미디어 산업 간 각축전 및 이전투구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의 일상이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FTA나 양자 간 투자협정(BIT)을 맺은 나라들의 경우 그 이전투구의 흙탕물이 엉뚱하게도 정부, 그리고 나아가 국민 전체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바로 그러한 조약이나 협정 안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라는 희한한 제도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지난 5월 19일 <프레시안>의 보도('미국기업에 한국 제소권 보장' ☞ 바로가기)를 통해 우리는 한사코 숨겨 온 한미 FTA 협상안에 바로 이런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부인하지 않고, 대신 이 제도는 이미 정부가 성사시킨 몇 개의 다른 FTA에도 포함되어 있고, 또 세계적으로 모든 투자협정이나 FTA에 포함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또 실제 이 제도가 활용되어 소송이 벌어지는 건수는 많지 않기에 그 위험성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첫째, 이 제도가 마치 거의 성문법에 가깝도록 국제적으로 안착된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1990년대 초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처음 생겨난 이 제도는 이후 숱한 비판과 저항에 부딪히면서 1990년대 지구정치경제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앞으로 보겠지만, 1990년대 말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 추진되던 다자간 투자협정(MAI)이 결국 결렬된 데도 이 제도에 대한 논란이 큰 역할을 했으며, 최근에 체결된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AUSFTA)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내의 거센 반대여론에 의해 결국 이 제도에 관한 조항은 빠지게 되었다. 나아가 미국 내에서조차 이 제도를 명시한 NAFTA 11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이런 여론을 이끈 인물은 다름 아니라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존 케리(John Kerry) 상원의원이다.
 
 둘째, 실제 소송의 건수가 적고 규모도 작으므로 이 제도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과장이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 제도로 인해 멍들고 있는 나라는 체코뿐만이 아니다. 2003년 현재 파키스탄 정부는 스위스 회사 SGS, 이탈리아 회사 Impreglio, 터키 회사 Bayinder 등에 의해 각각 수억 달러의 소송에 걸려 있고, 그 배상요구 총액은 10억 달러에 달한다. 유엔 산하기관인 UNCTAD는 지난 1997년 이후 2004년까지 이 제도로 인한 국제적 소송 건수가 8배로 증가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UNCTAD의 '투자기술사업개발국' 국장인 소방(Karl P. Sauvant)은 2004년도 보고서에서 "모든 정황으로 볼 때 각국 정부는 투자협정 협상에서 대단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논평했다.
 
 한미 FTA 전반의 위험성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지적이 나와 있다. 그럼에도 전대미문의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의 세부내용을 뜯어보면 실로 포복절도할 만한 부조리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금은 그런 세부사항 하나하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로 한미 FTA에 관한 토론이 발전돼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야말로 그러한 세부사항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며, 한미 FTA의 성격과 그 결과의 예후를 보여줄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는 결코 몇 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돈 계산으로 찬반을 논할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는 1990년대 이후 구조적 변화를 보여 온 지구정치경제 체제의 본질적 성격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의미심장한 것이고, 지난 10년 간의 여러 경험들에서 숱한 문제점과 모순을 드러낸 것이며, 단순한 경제적 사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보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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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래서 국가가 투자자의 소송대상이 됐구나"  
 [한미FTA 뜯어보기 108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3)] 현대판 상인법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실로 특이한 1990년대 이후의 신 발명품이다. 이 제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예를 들어 국제 중재재판 제도, 상인법(lex mercatoria), 투자보호 협정 등은 물론 그 전부터 있던 것이며 어떤 것은 멀리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 상인들로까지 소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제도들이 한데 뭉쳐 지금 우리 눈앞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고 하는 지구정치경제의 큰 흐름 속에서 보지 않으면 그 의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그 역사적 흐름을 날줄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최근의 세계정세를 씨줄로 하여 이 제도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살펴보자.
 
 중세 상인법 성립의 배경
 
 중세 유럽은 법적 제도의 일관성으로 보자면 극히 파편화되고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과 같이 잘 만들어진 법체계로 제국 전체를 다스릴 수 있었던 비잔틴 제국과는 달리 교회법, 로마법, 실정법, 관습법 등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법체계들이 혼란스럽게 병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법체계는 12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상업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상업이라는 행위는 아주 정교한 법적인 규범과 약속의 틀 안에서만 번성할 수 있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인프라'가 없다면 상행위는 언제든지 사기와 주먹다짐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중세의 상인들은 이러한 법적인 혼란상태 속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법, 즉 상인법을 만들게 된다. 큰 장터를 찾아 전 유럽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상인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시비가 붙을지, 어떤 부당한 상황에 부딪힐지 모른다. 그런데 분쟁과 시비를 항상 그 지역의 영주나 교회의 판결에 맡겨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선 기약 없이 발이 묶여 장사를 망칠 것이요, 영주들이 재판비용이랍시고 요구하는 수수료도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재판소에서 사용하는 법적 논리가 상업의 논리에 그다지 맞는 것도 아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시비가 붙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고, 그 해결은 그저 당사자들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타협을 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법정에서 '정의'니 '공정가격'이니 하는 복잡한 법체계 상의 논쟁에 휘말릴 경우엔 그야말로 짜증이 극점으로 치달을 것이다.
 
 상인들은 유럽의 주요 교역로와 주요 상업중심지 곳곳에 상인법을 시행할 만한 재판소(사실 이것은 재판소라기보다는 중재기관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를 세우고, 신속하고 값싸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장치를 만든다. 이런 재판소의 판사 자리에는 오랜 장사꾼 경험 속에서 상업의 온갖 관행과 실제 사례에 정통해 있고 상인들 사이에서 신용과 명망을 쌓은 이들이 앉았다. 재판에서는 분쟁이 생긴 양쪽이 각각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판사는 '정의를 실현'하기보다는 양쪽이 조속히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재'를 했다. 그래서 분쟁의 양쪽 당사자는 재판소에서 후닥닥 문제를 해결한 뒤 각각 가던 길을 간다.
 
 상인법에 의한 재판은 보통의 공공 재판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갖고 있었다. 먼저, 이 재판의 절차는 철저하게 분쟁 당사자들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재판소의 선택, 증거의 종류나 제출 방식, 사용되는 법적 원천의 종류 등이 모두 양쪽의 합의에 의해 결정됐다. 상인법에 의한 재판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었음을 기억해두는 것이 현재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담당하는 국제 중재심판의 절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상인법에 의한 판결은 강제력을 통한 집행(enforcement)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당시 사회적 폭력을 행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영주 등이 상인법의 운영 과정에 끼어드는 일이 드물었으므로 그들의 힘을 빌릴 수도 없었다. 결국 유럽을 오가는 상인 공동체의 상호신뢰가 상인법에 의한 판결의 효력을 뒷받침하는 암묵적인 힘이 되었다. 자기가 합의한 절차를 거쳐 내려진 판결에 복종하지 않는 상인이 있다면, 상인 공동체에서 그 상인을 시쳇말로 '왕따'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상인법이라는 것은 결국 자립적인 논리체계와 집행체제를 갖춘 법적 원천이었다고 보기 힘들고, 어떤 이들은 아예 상인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인법으로 일컬어지는 관행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공식적인 국제법 체계의 외곽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중재 과정의 규칙과 진행절차에서 중요한 모범이 되고 있다.
 
 주권국가의 등장 이후
 
 혼란스러웠던 서유럽 세계의 법적 질서는 17세기에 들어 근대적인 영토국가들로 이루어진 소위 베스트팔리아 체제(Westfalia System)가 성립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유럽은 이제 한 조각의 땅도 남김없이 모두 배타적인 국경선과 영토를 주장하는 영토국가의 퍼즐 조각들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그런 국가들은 각기 자국 영토 안에서는 오로지 자국만이 법을 정할 수 있는 권력인 주권(sovereignty)을 가지며 그밖의 다른 어떤 법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에 따라 예전의 상인법은 국가의 법제화를 거쳐 각국에서 통일적으로 시행되는 민법과 상법으로 흡수된다. 그 밖의 여러 다른 기존의 법적 원천들도 이제 주권국가가 포고하는 법전으로 통합된다.
 
 유럽이 이렇게 국가별로 독자적인 법체계를 가진 퍼즐 조각들로 찢어지게 되자, 각각의 퍼즐 조각 사이의 법, 즉 국가 간의 법체계는 어떻게 해냐 하느냐는 문제가 생겨났다. 이것은 이후 몇 백 년 간 유럽 법학자들을 괴롭힌 문제였고, 현실적으로 제도화하는 것도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유럽의 국가 간 관계란 이른바 '세력균형 체제(Balance of Power System)'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는 '전쟁을 통한 힘의 균형 달성'을 체제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체제였다.
 
 무력경쟁과 전쟁의 상황에서도 구속력을 갖는 '국제법'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으로 인해 정치학자들 중에서는 아예 국제법, 즉 '주권국가 사이의 법'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이런저런 경험과 관례가 축적되어 20세기에 이르면 비록 국내법만큼 강력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갖는 국제법 체계가 성립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국제법은 어디까지나 주권국가들 사이의 법, 즉 '국제공법(public international law)'라는 점이다. 국제법 성립의 유일한 원천은 주권국가들이고, 주권국가들의 동의(consent)가 그 효력의 유일한 근거가 되며, 국제법이 적용되는 대상도 주권국가들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구성원에 국가만 있는 것은 아니며, 국경을 넘어서는 상호작용에 국가 간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어느 상인이 영국의 어느 회사와 큰 거래를 진행하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 소송이 붙는다면 어느 법을 적용해야 하는가. 프랑스의 상법을 적용해야 하는가, 영국의 상법을 적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제3의 법', 즉 국제상법과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적용해야 하는가.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적 권력을 가진 주체는 주권국가다. 국제법이 있다면 주권국가들끼리 동의한 국제공법이 있을 뿐이다. 이 체계 밖에 따로 존재하는 국제상법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프랑스 법정에서 프랑스 상법에 따르든가, 영국의 법정에서 영국 상법을 따르든가, 아니면 제3국, 이를테면 네덜란드에서 소송을 진행하면서 네덜란드 상법을 따르든가 해야 할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판결이 나온 뒤에도 여러 상법들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있을 수 있기에 그 판결이 각국 국내의 법과 모순될 수 있다. 국제사법(private international law)이란 다름아닌 이러한 나라들끼리의 사법 상 갈등이 있을 때 그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각 나라의 고유한 절차들의 묶음에 불과하며, 그래서 국제사법을 가리켜 '여러 법들의 갈등(conflict of law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래의 한쪽 당사자가 국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자본가가 아르헨티나에 투자해 광산을 사들였는데 아르헨티나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인해 그 광산을 억울하게 빼앗기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 영국 자본가는 아르헨티나 정부를 직접 상대로 해서 법적 행동을 할 수가 없다. 국제법 상 주권국가와 개인은 법적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자본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정부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만약 영국 정부가 그의 호소에 귀를 기울인다면 영국 정부가 나서서 국제 중재재판에 제소할 수도 있고, 아르헨티나 정부와 외교적 협상을 벌여 문제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두 나라 정부 간의 문제이지, 문제의 영국 자본가가 직접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중반까지도 관습으로 굳어져 있었던 국제법의 전통이다.
 
 이렇게 경직되고 복잡한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법 체계는 세계적 차원에서 상거래를 펼치는 이들에게는 인기 있는 것이 되기 힘들다. 그래서 19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공식적인 국제법 체계의 가장자리에서 옛날 '상인법'의 정신이나 관행에 따라 국제상거래 관계에서 상인들 스스로가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절차에 호소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적으로 벌어지던 상인들 간의 중재를 국제체제의 한 제도로서 인정하고 그것에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국제상업을 부흥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국제 중재심판의 제도화
 
 마침내 1923년 국제통상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의 주도로 유럽 17개국 대표들이 제네바에 모여, 민간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해결을 구속력 있는 중재심판에 넘기기로 합의하고 이를 각국이 법적으로 인정하기로 한다(Geneva Protocol of 1923). 그 이후 여러 번의 갱신과 발전(Geneva Convention of 1927, New York Convention of 1958)을 거치면서 제도가 점차 발전하여, 이제는 중재심판이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건 각국은 그 결정을 자국의 법률에 비추어 재검토하는 일 없이 그대로 법적 집행력을 갖는 것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여기에 참여하는 나라도 현재까지 130개국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중재(arbitration)란 정해진 절차와 법적 원천 및 체계에 따라 진행되는 공적인 법원의 재판과는 다른 것이다. 중재에서는 첫째,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과 절차가 모두 분쟁 당사자들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둘째, 당사자들의 사적인 정보 유지와 사업기밀 누설 방지를 위해 심판의 진행은 모두 비밀에 붙여지고 분쟁의 심판을 맡은 이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중재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분쟁해결 방식인 것이며, 중세 상인법의 전통과 여러 모로 유사하다.
 
 결국 20세기 들어 지구경제의 확장과 더불어 중세 상인법의 관행을 닮은 사적 중재심판이 국제법적 지위를 갖춘 하나의 제도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각국의 국내법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는 나름의 구속력을 가지게 된 것은 실로 중요한 발전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이 국제통상회의소(ICC)의 불만이었다. 각국이 국내 법과의 일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순응해야 하는 중재심판의 대상이 민간인들 사이의 '상업적(commercial)'인 사안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 다시 보겠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장에서 정의된 '투자'의 포괄적인 정의에 비하면, 이 '상업적'이라는 말로 인해 중재심판 대상의 범위가 좁아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재심판의 결정이 나왔다 해도 그 결정이 '상업적'인 범위를 넘어 예를 들어 각국 공공정책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 각국 정부는 그것을 무시할 권리를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 다국적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각국으로 생산영역을 확장하면서 투자대상국 정부들과 이런저런 마찰을 빚기 시작했음에 비추면 이런 한계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1965년에 열린 '투자분쟁조정 회의(ICSID Convention)'는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이 회의는 기존에 확립된 사적인 국제 중재심판 제도를 이제 국가와 외국 투자자 간의 분쟁에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나아가 세계은행 산하에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Investment Dispute Settlement: ICSID)'라는 포럼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가와의 관계에서 외국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중재의 절차와 규칙 등을 정하기로 하고, 분쟁이 생길 경우에는 이 센터에 중재심판을 조직하는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사적 절차였던 중재심판이 급기야 주권국가와 투자자의 관계로까지 확대 적용되고 그 절차와 규칙도 제도화된 것이다. 이로써 투자자가 직접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중재심판을 통해 주권국가에 대한 구속력이 행사되도록 할 수 있는 제도의 터가 닦인 것이다.
 
 하지만 ICSID는 오늘날의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와는 아직 큰 차이가 있었다. 어떤 나라가 ICSID에 서명했다고 해서 그 나라가 그때부터 '모든' 외국 투자자와의 '모든' 분쟁사항과 관련해 ICSID에서 마련한 중재심판에서 내려진 결정에 모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권국가는 여전히 국제법이 발휘하는 효력의 원천이었다. ICSID의 심판이 개별 국가에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이 건은 우리나라의 법적 권한에 속하지 않으며 ICSID의 중재심판 대상이 된다"는 식의 명시적인 의사표명을 해야 했다.
 
 이러한 명시적 의사표명은 우선 '계약'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 외국 투자자를 받아들이고자 하는데, 마침 광업에 투자하려고 하는 외국인 A가 있고 카지노에 투자하려고 하는 외국인 B가 있다고 하자. 이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A는 꼭 잡아야 할 투자자이지만 B는 오지 말았으면 하는 투자자일 수 있다. 이 나라는 A와의 계약에서는 투자보호의 확신을 주기 위해 "분쟁이 생길 경우 ICSID의 중재에 맡긴다"고 계약에 명시할 수 있을 것이고, B와의 계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A와의 계약과 관련해서만 ICSID의 중재심판이 이 나라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다. 이 나라의 부패한 경찰과 공무원들이 B의 카지노에 달라붙어 '삥'을 뜯어간다 해도 B가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ICSID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새로이 시도된 것이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의 도입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살펴보기로 하자.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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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공세', 국제법 체계를 완전히 뒤엎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4)] 투자협정  
 

 
 특정 국가가 '익명의 모든 외국 투자자들'에게 '모든 투자'와 관련해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의 중재심판에 복종하겠다고 약속하는 일괄적인 계약 같은 것은 없을까? 있다.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 바로 그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국제 중재심판
 
 특정 국가가 어떤 특정한 외국 투자자와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특정 국가와 협정을 맺는다면, 그 협정은 국가와 국가 간에 맺은 조약이니 흠결 없는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 협정에서 상대 국가에 "당신네 나라의 모든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모든 계약과 관련해 생기는 모든 분쟁을 ICSID의 중재심판 회부함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일괄적인 동의를 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ICSID는 투자협정의 양 당사국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외국 투자자 대 국가의 분쟁에 대해 구속력 있는 중재심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투자협정은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불만을 제기하는 외국 투자자가 나타나면 국가는 언제든 ICSID로 불려 나가야 하고, 제기된 불만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 국가는 ICSID의 중재심판 결과에 복종해야 한다. 심지어 그 불만이 주권국가의 고유한 입법조치나 행정조치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주권을 외국 투자자와 ICSID에 양도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어떤 나라든 그야말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외국인 투자의 단비를 목 타게 기다리는 상황이 아닌 한 다른 나라와 투자협정 같은 것을 쉽게 체결하려 하지 않는다. 투자협정 체결은 195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있긴 했으나, 몇몇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드물게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이처럼 투자협정을 통해 국제 중재심판에 대한 복종을 약속한 나라가 많지 않았고, 따라서 ICSID라는 장이 만들어졌어도 국가를 상대로 한 분쟁사건을 들고 그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적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 지구화가 본격화되면서 각종의 양자 간 또는 다자 간 투자협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결과로 현재 그 수가 2000개를 넘게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1965년에서 1994년까지 30년 간 32건에 불과했던 ICSID 중재심판 건수는 1995년에서 2004년까지의 불과 9년 동안 140건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ICSID와 달리 분쟁발생 사실을 공표할 의무가 없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나 국제통상회의의 국제중재법원(ICA)과 같은 그밖의 국제분쟁 조정기구들의 중재심판 건수까지 더하면 국제 중재심판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ICSID에서 일하는 법률가 오바디아(Eloise Obadia)는 2002년 취리히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면에서 양자 간 및 다자 간 투자협정과 ICSID의 관계는 '백마 탄 왕자님(Prince Charming)'과 '잠자는 미녀(Sleeping Beauty)'의 관계와 같다. ICSID는 생겨난 후 30년 동안에는 '잠자는 미녀'와 흡사했다. 등록되는 제소 건수가 연평균 한두 개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양자 간 및 다자 간 투자협정이 확산되자 ICSID는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서 우리는 1990년대에 들어 투자협정이 왜 그렇게 급증하게 됐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의문에 답하는 것은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2차대전 이후 지구화의 3단계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지구적 경제'라고 할 수 없었다. 지구 표면과 인구의 상당부분이 공산진영에 속해 있었고,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다수도 사회주의나 혁명적 민족주의에 근거한 국가주의적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방세계에서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체제였고 무역, 통화, 노동, 조직, 기업 지배소유구조 등 모든 면에서 각종의 규제들이 존재했다. 이런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 모습은 지구적 차원에서의 자본과 상품과 서비스의 완전한 자유이동이라는 자유무역의 이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래도 기록적인 고성장 기조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존속해 오던 지구적 체제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해체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세계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이 대략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70년대 초반에 미국 달러화를 기축으로 하는 고정환율제가 무너지고 오일쇼크가 발생하면서 2차대전 직후의 세계경제 체제에 최초의 충격이 가해진 것이 그 첫 번째 단계였다. 기존의 전후 세계 정치경제 체제를 떠받치던 포디즘적 생산체제는 통화와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전제조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전제조건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 충격은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적 혼란 외에 내란, 국제분쟁 등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졌고, 그 와중에 영국과 미국의 보수세력을 필두로 노동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코포라티즘적 사회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한다. 또 엄청난 양의 오일달러가 서방의 은행을 거쳐 제3세계 국가의 외채로 흘러가고 자본이동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은 그 두 번째 단계였다고 할 것이다. 이 기간에 미국의 통화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살인적인 금리인상을 감행했고, 이 때문에 이미 많은 외채를 빌려 쓰고 있던 제3세계 국가들이 속속 외채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군사예산을 폭발적으로 늘려 소련을 압박하는 '제2의 냉전'에 착수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0년대에 제3세계에 시장개방이 확산된다. 외채 위기를 맞은 개발도상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들어가 악명 높은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을 감행함으로써, 폐쇄적적이던 개발도상국의 자급자족적 거시경제 구조를 순식간에 개방시켜버린다.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종속이론을 탄생시키고 민족경제를 강조하던 나라들도 이제는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가 하면, 무역과 금융을 개방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 해외에 매각하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진영도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과거 공산진영에 속했던 나라들에 새로 들어선 정권들도 거의 예외 없이 '시장과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 후로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지구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고, 이 시기를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3단계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버티던 '아시아적 자본주의' 국가들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이 지구적인 '페레스트로이카'의 대열에 합류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후 세계를 이루고 있었던 '갑각류처럼 단단하고 폐쇄적인 각국의 거시경제 구조'를 개방시키는 작업이 이 시기에 거의 완료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지구화라는 이상은 실현된 것일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민경제' 운운하면서 해묵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고집하던 갑각류들의 껍질은 거의 벗겨졌지만, 그 껍질 속에는 기존의 가지가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와 관행과 장치들이 엄존하고 있다.
 
 1990년대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내세워 새롭게 단장한 007 영화 제목대로 진정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All the World's A Stage)' 자본이 지구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수익의 가능성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남은 장벽들을 제거하고 무력화시킬 효과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즉 지구화의 단계는 이제 거시경제의 차원에서 미시적, 정치사회적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전 세계에 강제되고 있는 '신헌정주의'
 
 199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정치학계에서 가장 뚜렷하게 부각된 열쇠말 하나는 바로 '지구적 통치(global governance)'였다. 양대 강국을 중심으로 편제됐던 냉전적 세계질서는 사라졌다. 그 후의 세계에 하나의 자율적 질서가 성립하도록 전 지구적 차원의 보편적 규범(norm)을 창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문제였다.
 
 이러한 논의의 대상이었던 1990년대의 세계질서를 스티븐 길(Stephen Gill)과 같은 비판적 지구정치경제학자는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이건, 자본을 투자한 자의 권리와 이익이 제일의 우선성을 가지며 지상의 그 어떤 권위와 권력과 법률도 그러한 자의 목표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전 지구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와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신헌정주의(New Constitutionalism)'가 바로 그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지구적 통치의 규범'으로서 전 지구에 강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자 간 및 양자 간 투자협정, 그리고 그 핵심을 이루는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도라는 새로운 현상이야말로 그러한 '신헌정주의'를 현실화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투자협정과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도는 몇 백 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법의 체계를 한 번에 넘어서서 주권국가의 모든 통치행위를 외국 투자자의 이익이라는 기준에 따라, 그것도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상인법적 전통의 사적 기구를 통해 무력화시키는 무기가 되고 있다.
 
 특히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가 도입됨에 따라 이제 국제 투자자들은 개별 국가 안에 존재하면서 투자의 수익성에 장애가 되는 오만 가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장벽들에 대해 예전처럼 하나하나 악전고투를 벌이며 싸울 필요가 없게 됐다. 국가를 책임자로 몰아 소송으로 국제법정에 불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원래의 국제법 체계에서는 도저히 동렬에 설 수 없었던 국가와 외국 투자자가 이제 동급으로 맞먹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국가가 외국 투자자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함께 상업적 행위자 차원의 동급이 된 것이 아니다. 외국 투자자가 주권국가와 동급의 수준으로 올라가서 그 입법활동과 행정활동을 분쟁의 대상으로 삼을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뒤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러한 분쟁이 벌어지는 곳은 공적 이익을 비롯해 다양한 고려가 이루어지는 보통의 공공 재판소가 아니라 당사자 둘과 심판관 한 명이 조용히 모여 상업적 고려에만 근거해 대충 합의를 보는 중재심판소다. 이런 중재심판소는 과거의 상인법이 부활한 것인 동시에 예전의 상인법과는 전혀 다른 국제법적 위력도 갖춘 존재다.
 
 이러한 포복절도할 사태에 대해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의 반 하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투자자 보호 체제는 상인법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상업중재와는 달리, 민간인들 간의 행동을 규제하거나 그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체제의 목표는 정부가 다국적 기업들을 규제하는 방법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협정에 따라붙게 되는 투자자-국가 분쟁은 본질적으로 공적 분쟁, 즉 어떤 국가가 자기 영토 안의 개인들을 규제할 주권의 행사를 문제로 삼는 분쟁이다. 비록 이 체제가 국제 상업중재의 모델을 따르고 있고 사적 차원의 권위를 통치수단으로 삼고 있으나, 이 체제는 국제 상업이 아니라 국제 공법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여러 국가들의 권위로 뒷받침되는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들은 그런 투자자 보호 체제를 포함한 투자협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대중 정부 이래 우리나라의 경제관료들과 주류 경제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입에 올린 핵심어가 바로 '외국인 투자 유치' 아니었던가. 우리 국가경제의 흥망성쇠는 모조리 여기에 달려 있다는, 그래서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선이요, 그것에 해가 되는 것은 절대악이라는 생각이 이미 우리 사회의 담론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이 이러하다면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이리하여 3단계의 지구화 전략의 마지막 단계, 즉 투자협정을 앞세운 자본의 공세와 '신헌정주의'가 세계 곳곳으로 힘을 뻗치게 된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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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용 방패'가 '공격용 창'으로 변하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5)] 투자자 보호장치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도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을 뿐, 그 구체적인 내용과 이에 대한 정부의 협상방침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이 추진하거나 성사시킨 각종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들의 대표 격이자 그 표준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기준으로 이 제도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한미 FTA는 NAFTA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NAFTA 플러스'라는 말이 양국 관료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니 그렇게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외국에 투자하는 이들의 이익과 재산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외국에 투자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말할 것도 없이 투자대상국에서 예기치 못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 자신이 투자해 놓은 자산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이다.
 
 과거 멕시코의 카르데나스 정부에서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를 거쳐 칠레의 아옌데 정부와 1970년대 말의 이란 혁명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 자본가들이 투자대상국에 갖고 있었던 공장과 기업을 순식간에 국유화당해 빼앗기는 악몽을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미국 자본가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의 자본가라 해도 이러한 위험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제도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는 투자를 할 리가 없다. 그러니 투자협정이나 자유무역협정에 그런 제도를 집어넣는 것은 당연하다고 많은 교과서에 씌어 있고, 우리나라 외교통상부도 이런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속 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지구화된 21세기 세계경제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국 투자자들을 위해 일정한 보호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반대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 보호장치가 하필이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라는 논란 많은 제도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의를 갖고 있다. 정부 관리들은 그동안 이 제도가 시행되어 온 과정과 그것을 뒷받침한 이론을 살펴보았는가?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 제도는 1990년대 들어 투자자들을 지켜주는 방패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투자대상국의 정치와 사회를 공격하는 창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물'이 아닌 '자산'이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다
 
 NAFTA 11장에 나오는 '투자자의 이익 보호'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출현했는지를 살펴보자. 다만 그 전에 잠깐, 19세기 이후 미국 법률의 역사에서 '사적 소유'와 '수용(收用, expropriation)'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돌아보아야겠다. 사적 소유와 수용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떠받치는 기본 개념이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가 국제 중재재판에서 해석되고 시행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 특히 제5수정조항(Fifth Amendment)과 제14수정조항(Fourteenth Amendment)에 명기된 '사적 소유 보호' 개념은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이래의 영국 보통법(Common Law) 전통을 잇고 있다. 그 요점은 아주 간단하다. 정부는 개인의 사적 소유물을 가져갈 수 있지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 개인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에서 쓰레기 폐기장을 짓기 위해 나의 알토란같은 땅뙈기를 가져갔다면? 이 경우에는 나라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내 땅을 가져간 것인데다가 관련 법절차를 모두 거친 '수용'일 테니 내가 무조건 나의 사적 소유권을 내세워 나라의 조치에 반대할 수 없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분명 나에게 그 땅의 가치에 맞먹는 배상을 해야 한다. 이는 삼척동자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이다. 이처럼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법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명쾌함도 어디까지나 소유의 대상도, 수용의 대상도 다 '토지'와 같은 가시적인 사물(thing)인 게 분명할 때에나 가능하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거쳐 18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소유의 주요 대상이 사물이 아닌 온갖 자산(asset), 즉 소득을 창출해주는 모든 것이 된다. 이에 따라 사적 소유의 대상은 토지와 같은 구체적 '사물'이고, 수용이란 사물을 맘껏 사용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는 단순명쾌한 보통법의 관념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872년의 '도축장 사건(Slaughtering House Case)'을 보자. 당시 루이지애나 주의회는 루이지애나 시내에서 도축장을 독점적으로 운영할 권리를 특정 법인에 주고, 모든 도축업자들은 그 도축장에서 소정의 사용료를 내고 도축을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졸지에 터무니없이 높은 도축장 사용료를 내게 된 도축업자들은 루이지애나 주의회의 조치가 자신들의 사적 소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연방 법원에 제소했다.
 
 그러자 대법원 판사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사적 소유의 대상은 소유자가 갖고 있는 '사물'인가, 아니면 그 사물을 사용하여 벌어들이는 '화폐적 가치'인가가 쟁점이었다. 만약 앞쪽 정의가 맞는다면 루이지애나 도축장 사건은 아무런 사적 소유의 침해도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주정부가 도축업자들이 갖고 있는 사물, 즉 그들의 도축장비나 고객들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며, 그들은 그 전과 똑같이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뒤쪽 정의가 옳다면 도축업자들은 명확하게 큰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었고, 따라서 주정부가 헌법을 어긴 것이니 마땅히 그 법을 철회하든가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872년은 아직 전통적인 보통법의 사고방식이 강한 때였기에 결국 대법원의 판결은 '사적 소유의 대상은 사물이며, 따라서 주정부는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그 직후인 1880년대의 미국은 그렇게 소 몰고 내 땅에 가서 농사 짓고 돌아와 씻고 잠자던 예전의 평온한 세상이 아니었다. 철도가 뚫리고 땅투기가 벌어지고 주식 물타기라는 신종 금융기법이 개발되는 등 한마디로 세상만사를 '나의 수익 창출능력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밴더빌트, 카네기, 모건, 록펠러 등 대자본가들이 온 사회를 헤집고 바꾸어버리는 '날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의 시대였다. 사적 소유의 법적 정의도 그래서 점점 더 '화폐가치' 쪽으로 기울어진다.
 
 미네소타 주정부는 철도 건설 과정에서 토지의 가치 변동을 겪게 된 땅주인들에게 배상을 하게 되는데, 그 배상액의 결정을 놓고 시비가 벌어져 마침내 1890년에 대법원까지 올라간다(Minesota Rate Case). 주정부는 "정부에서 토지의 소유권을 가져간 것이 아니며 단지 토지의 가치 삭감만 일어났으니 사적 소유가 침해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이 문제는 헌법적 사안이 아니라 주정부의 재량 아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땅주인들은 "비록 정부에서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았다 해도 토지의 화폐가치가 떨어졌으니 주정부가 우리의 사적 소유물을 수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배상액은 주정부가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다(미국 헌법 제5수정조항은 배상의 기준을 시장가치에 둔다).
 
 대법원은 어떻게 판결했을까? 뜻밖에도, 사적 소유의 대상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미래수익 창출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 땅주인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따라서 미네소타 주정부가 자의적으로 배상액을 결정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다. 20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사적 소유의 법적 정의가 정반대로, 다시 말해 단순한 '사물'에서 '사물을 통해 벌어들일 화폐가치', 즉 '소득창출 능력'으로 바뀐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더욱 극적인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위에 덧씌워진 '소득창출 능력'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중요하다면, 물질적 형태가 있든 없든 소득창출을 가져다주는 것은 모두 사적 소유를 주장할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에 따라 '무형자산'들도 당연히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무형자산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됐다. 의회나 정부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그 조치가 누군가의 '소득창출 능력'을 감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조치가 구체적 사물과 관련된 것이건 무형의 각종 사실들(facts)과 관련된 것이건 사적 소유의 침해인 수용에 해당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그 조치를 철회하든가, 아니면 그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를 배상하든가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무형자산'이란 사실 그 포괄범위가 넓으면서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무형자산에는 특허권이나 사업권과 같이 비교적 구체적인 것도 있지만 대중적 평판, 기업의 이미지, 더 나아가 그 이름도 아리송한 '굿윌(goodwill, 영업권)' 등 실로 '기업의 소득창출에 도움이 되는 모든 사실관계'가 다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만한 조치는 모조리 사적 소유의 침해가 되니, 정부는 조치를 철회하든가 '수용의 대가'를 치르든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런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법의 임무가 된다면?
 
 1980년대에 시작된 반전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고 해보자.
 
 "나는 번화가 중에서도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 조그만 토스트 집을 열었다. 워낙 큰 길을 끼고 있어 행인이 많았고, 신호가 바뀌는 주기도 길었다. 그래서 아침 출근 때에는 신호를 기다리다가 향긋한 빵 내음에 취한 사람들이 가게로 엄청 꼬여들었다. 그야말로 '길목'이라는 무형자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시청에서 신호등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지하도를 만들기로 했다. '길목'은 없어졌고, 사람들은 빵 내음은 맡을 틈도 없이 지하도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매상이 절반으로 줄었다. 결국 시청은 지하도를 만듦으로써 나의 무형자산을 없앤 것이니 내 사적 소유를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시청은 그 지하도를 없애거나 내게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럴까? 그렇다면 정부와 의회는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입법을 할 때 관련되는 사회적 관계와 사실들을 모조리 다 살펴서 아무도 그로 인해 수입이 떨어지는 일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일까?
 
 일개 토스트 가게 주인이 위와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하니 터무니없어 보이겠지만, 만약 무형자산의 소유자가 철도왕 밴더빌트,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모건과 같은 사람인데 그가 무형자산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면 대단히 심각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돈으로 고용한 변호사들은 두었다가 무엇을 할 것인가. 대자본가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조치를 정부가 취하려고 할 때마다 변호사들을 내세워 그 조치를 간단하게 물리친다.
 
 '사적 소유'에 대한 이런 포괄적인 정의는 20세기 초에 미국 자본주의의 관행이 되어버렸고, 결국은 대자본가 몇 명의 사업상 이익에 의해 온 나라가 휘둘리는 상황이 조성되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래서 1920년대의 걸출한 미국 지식인 두 명, 즉 경제학자인 존 커먼스(John Commons)와 사회철학자인 모리스 코헨(Morris Cohen)은 서로 일치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예전처럼 사물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사회적 사실관계로까지 그 대상이 확장된 '사적 소유'란 사실상 사회적 권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더 나아가 코헨은 이러한 권력은 이미 전통적인 국가의 권력, 즉 주권(sovereignty)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1930년대에 들어서 뉴딜(New Deal) 정부가 사적 소유를 이렇게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관행에 쐐기를 박고, 각종의 규제와 법적 조치로 그 의미를 좁혀나가기 시작한다. 세월이 흘러 1960년대가 되면 사적 소유가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대부분의 사회적 권력은 국가의 행정과 입법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사적 소유의 의미는 '국가가 허용하는 만큼의 소득을 취득할 권리' 정도로 축소된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자 이야기가 다시 반전된다. 신자유주의의 시작이라 할 레이건 정부 시절에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자본가들과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이 사적 소유권의 확장을 노리고 '규제에 의한 수용(regulatory expropriaton)'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것은 정부가 사적 소유물을 가져가거나 물리적인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정부의 규제로 인해 특정한 소유권이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로 인한 피해만큼의 금액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시내의 목 좋은 곳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데 하필 그 지역에 대한 정부의 규제, 예를 들어 건물의 높이나 지하실의 깊이 등을 제한하는 규제가 도입되어 그 땅에 수익성 있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게 된다면? 이 경우에 비록 정부가 내 소유권 자체를 건드린 것이 아니고 도입된 규제도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해도 나는 그 금싸라기 땅을 놀려두는 수밖에 없으니 금전적 피해를 본 것이고 마땅히 정부가 그만큼을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철폐한다는 레이건 시대의 구호와 맞물려 상당한 사회적 힘을 얻게 되었다.
 
 미국 대법원은 이런 경우에 정부 편을 들어주는 역사적 경향을 갖고 있었다. 정부의 조치로 인해 물리적 침해는 일어나지 않고 소유물의 경제적 가치가 감소된 것만으로는 그 가치 감소가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 해도 해당 정부 조치가 수용임을 증명하는 데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확립된 원칙이라는 것이 1993년에 미국 법원에서 나온 한 판결(Concrete Pipe and Prods. of Cal., Inc. v. Construction Laborers Pension Trust for S. Cal.)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회의 전반적 변화 및 보수화가 서서히 미국 법조계와 헌법학계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2년의 한 판례(Lucas v. South Carolina Coastal Council)에서는 어떤 종류의 규제 조치는 토지에 대한 수용이 될 수 있음을 법원이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엡스타인(Richard Epstein)을 비롯한 여러 법학자들은 이런 정도의 판결도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소유물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규제는 사실상 모두" 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의 의무를 규제당국에 지운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이런 의견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법과 제도의 관행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미국의 법조계 내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한 정부의 규제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흐름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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