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제정치경제학 강의 (6~ )
작성자 홍기빈
이메일
홈페이지
조회수 3794 등록일 2006/10/8 (7:11)
공공정책, 외국 투자자에 '된 서리' 맞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6)] NAFTA 사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11장에서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에서 적절하고 공정한 대우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건과 규범을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이 11장과 관련해서는 내국인 대우, 최혜국 대우 등 많은 쟁점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투자 보호'라는 개념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먼저 '투자'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공장을 짓고 생산설비를 들여놓는 설비투자(greenfield investment)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경향을 정치인들이나 보수매체들이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간접적 수용'과 '수용에 맞먹는 조치'란
 
 하지만 NAFTA 1139조의 정의에 따르면 '투자'란 기업은 물론 각종 유가증권, 부동산, 유형 및 무형의 재산 등 사실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산' 취득을 포괄하고, 더 나아가 각종의 이익을 낳는 자본기탁과 투자대상국 내의 각종 허가 및 특허권을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 자원의 취득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넓게 정의된 '투자'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 생산 따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쟁여두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즉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관계와 사실들이 투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적 소유의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하면 사적 소유의 대상은 더 이상 단순명쾌한 '사물'에 한정되지 않고 온갖 유형, 무형의 '자산'으로 넓어지게 되며, 사실상 온갖 사회적 관계에서 이점을 누릴 기득권으로 사적 소유의 의미가 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로 취득된 사적 소유물을 '보호'해야 한다면 어떤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가.
 
 NAFTA 1101조는 11장의 규정들이 적용되는 대상은 투자자 및 투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투자대상국이 취하고 유지하는 '조치들'이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201조 1항에 따르면 여기서의 '조치들'은 '모든 종류의 법, 규제, 절차, 요건 및 관행'이다.
 
 다시 말해 '투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무지막지한 혁명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피와 땀이 밴 공장과 생산설비를 함부로 빼앗는 폭력을 막는다는 식의 소박한 의미가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이제 투자자가 어떤 나라에 '투자'를 해서 취득한 '그 나라 내부의 사회적 관계에서의 기득권'을 마음껏 행사하는 데에 심지어 그 나라의 정부, 의회, 지방자치단체조차 끼어들 수 없게 밀어낸다는 공격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NAFTA는 외국인이 '투자'해 취득한 소유권의 행사를 합법적인 국가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제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NAFTA는 분명히 NAFTA 참가국 각각이 국내에서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는 외국인의 소유권에 제한을 가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권도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단, 조건이 있다. 국가가 돈을 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NAFTA 11장의 규정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1110조의 내용이다. 수용에 관한 조항인 이 1110조를 들여다보자.
 
 1110조: 수용과 배상
 
 1. 어떤 참가국도 자국 영토 내의 다른 참가국 투자자의 투자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국유화하거나 수용하거나 혹은 그러한 투자에 대해 국유화나 수용에 맞먹는 조치('수용')를 취해서는 아니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1) 공공의 목적을 위하는 경우
 2) 비차별적인 근거에 의하는 경우
 3) 1105조 1항의 적절한 과정과 조응하는 경우
 4) 2단락에서 6단락까지의 내용과 조응하는 배상금을 지불하는 경우
 
 4)에 언급된 '2단락에서 6단락까지'는 배상금은 시장가치로 계산해야 하고, 환율 등을 고려하여 조속히 지불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하튼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합법적인 수용'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즉 1)부터 3)까지를 다 충족한다 해도 외국인 투자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간접적 수용(indirect expropriation)'과 '수용에 맞먹는 조치(measures tantamount to expropriation)'라는 표현이다. 만약 수용이 토지와 같은 사물을 물리적으로 가져간다는 의미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간접적 수용'이란 무엇이며, '수용에 맞먹는 조치'란 또 무엇인가. 2003년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펴낸 보고서는 NAFTA를 포함한 각종 무역협정이나 투자협정에서 이런 두 가지 표현이 실제로 해석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점진적 수용(creeping expropriation)이다. 이는 소유자의 소유권에는 아무런 직접적 영향이 없지만, 국가의 개입과 조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투자의 가치가 잠식되는 상황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보았던 '규제에 의한 수용(regulatory expropriation)'이다. 이는 소유권의 화폐가치에 영향을 주는 법적 규제 등을 말한다. 국제법에서 국가는 환경, 보건, 소비자 보호, 유해물질 규제 등과 같은 영역에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할 '경찰력(police power)'을 보유하는 것이 전통적으로 인정되어 왔지만, NAFTA에서는 경찰력도 수용 관련 규정이 적용되는 대상이다.
 
 결국 19세기 말의 미국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간접적 수용'이나 '수용에 맞먹는 조치'라는 모호한 말의 실제 의미는, 투자의 '자산가치'를 훼손할 만한 일체의 정부 조치들이 모두 수용으로 해석되어 배상의 의무를 부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에 대한 법률과 관행이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외국 투자자들은 투자대상국에 투자를 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도 법적 보호를, 19세기 말 미국 자본가들이 누렸던 저 꿈같은 이상적 조건의 법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투자대상국 정부가 자신의 투자자산을 직접 건드리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라도 그 가치에 영향을 줄 만한 입법을 하거나 조치를 할 경우에 당당히 그 철회를 요구하거나 배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투자대상국의 국가와 국민들은 실로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제 국가는 어떤 입법을 하거나 조치를 할 때마다 항상 외국 투자자들의 수익에 영향이 없을지를 살피고, 영향이 있다면 그런 입법이나 조치는 하지 말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입법이나 행정조치란 사회적 형평이라는 가치를 위해 기득권이나 이익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투자'가 매우 폭넓게 정의된 상황에서 그것을 훼손할 일을 피해가면서 입법이나 행정조치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잔디와 흙이 깔린 곳은 모조리 출입금지'라고 선포하면 아이들은 어디서 축구를 하란 말인가?
 
 지금 한국 정부는 한미 FTA의 충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면서 여러 가지 대응을 잘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응이라고 한다면 각종 산업정책과 재분배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국내 도처에 쏟아져 들어올 미국 투자자들의 투자자산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그런 정책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소송비용이라는 부담이 있으니, 미국 투자자들이 매사에 사사건건 걸고넘어지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정책들은 그 덩어리가 크고 따라서 그것에 걸린 판돈도 크게 마련인데, 과연 미국 투자자들이 가만히 참고만 있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최근 들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에 따른 국제심판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 이런 의문에 답을 준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의 국가가 취하는 모든 행위가 문제가 되겠지만, 특히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은 보건, 환경, 안전 등의 분야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이 부분은 '경찰력'과 관련해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각국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NAFTA 11장은 이런 부분도 외국인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에서 배제되지 않는다고 암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지난 십몇 년 간 NAFTA에 참가한 세 나라의 시민단체들과 국제시민운동 세력이 가장 우려하고 반복적으로 항의해 왔다. NAFTA의 이 부분은 환경과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조차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의 손익 변동을 먼저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외국인 투자자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도도 없이 그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내놓는 일체의 선량한(bona fide) 입법과 행정조치들도 배상의 의무를 지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중재재판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의료 관련 시장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관련된 보험과 연금 시장까지 더하면 의료산업은 급성장하는 분야이므로 미국의 투자자들이 이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노무현 대통령은 '서비스 경제'의 도래를 원하고 있으니 이렇게 되는 상황을 반길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의 투자가 개방된 뒤에 한국 국민들이 정부를 통해 의료나 보험, 연금 등에 대한 입법을 하거나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익에 영향을 주지 않는 개혁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이 큰 규모의 시장에 들어온 그들이 과연 가만히 참고 있을까?
 
 지구화 상황에서의 캐나다 의료보험 체계의 미래를 짚어본 300페이지의 <로마노우 보고서(Romanow Report)>(2002)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의료보험 시장에 들어 온 외국인 투자자와 사적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캐나다의 의료보건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실제로 그렇게 될까? 그것들은 그저 가정과 추측에만 기반을 둔 지나친 피해망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맡는 국제 중재재판소들도 다 공정한 재판절차를 운영할 것인데 무리하게 보이는 투자자들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도록 허용하겠는가? 과연 국제 중재재판소들이 애매하고 포괄적인 '수용' 개념을 설마 그대로 적용하겠는가? 또 보건이나 환경과 같은 각국 고유의 영역까지 무시해가면서 오로지 투자자산의 가치 변화만을 고려해 판결을 내리겠는가? 이런 것 저런 것 다 감안해서 균형 잡힌 판결을 내리도록 할 제도적 장치가 있지 않겠는가? 괜한 요란을 떠는 것일 테지.
 
 하지만 국제 중재재판소들이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각각의 국제 중재재판소는 서로 독립적으로 심사하고 판결하며, 사건의 유형 별로 구속력 있는 판례가 쌓이거나 그런 판례에 대해 일관성을 갖춘 판결을 내려야 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분쟁의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수용에 관한 조항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누구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의 자산가치 감소의 경우 도대체 어느 정도 가치가 감소해야 수용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와중에 있다.
 
 미국 기업인 메탈클래드(Metalclad)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 벌어졌던 중재재판에서 나온 판결은 이런 논란에 대해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이 사건은 배상금의 규모가 컸던 데다가 환경 및 민주주의의 문제 등과도 얽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메탈클래드에 대해 쓰레기 폐기장 설치 허가를 취소한 멕시코 정부에 국제 중재재판소는 배상의 책임을 지웠다. 배상금 규모는 무려 1억6000만 달러였다.
 
 중재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문에서 간단하게 잘라 말한다. "본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고려해야 할 문제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이라고. 그리고 수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NAFTA에서 수용이란 공개적이고 고의적이며 자인된 '재산 가져가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 암암리에 행해지거나 고의성이 없더라도 소유권을 훼방하여 그 소유자로부터 '사용권'이나 '그 소유를 통해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의 전체 혹은 상당한 부분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경우에는 비록 투자대상국이 그로 인해 명백한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해도 그런 소유권 훼방은 수용에 해당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reasonably-to-be expected economic benefit)'이라는, '자산'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로써 수용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고의성이 없는(incidental)' 경우라 해도 국가의 어떤 조치로 인해 투자자산의 가치가 감소되는 '결과'가 초래된 경우는 모두 배상의 대상이 된다는 내용에도 주목해야 한다.
 
 즉 메탈클래드 사건을 담당한 중재재판소는 환경 문제에 대한 국가의 '경찰권(police power)'도 인정하지 않았고, 국가의 조치가 '선량한 동기'에 의한 것이었는지 여부도 묻지 않았다. 게다가 이 중재재판소는 '수용'을 정의하면서 대단히 확장된 의미의 '소유' 개념을 사용했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우리가 제기한 우려는 비현실적인 기우가 아닌 것이다. 기우이기는커녕 그 반대의 상황보다 현실화 가능성이 훨씬 높은 실질적인 가능성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NAFTA 11장을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이나 투자협정들에 들어 있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가 투자대상국의 민주주의, 헌법질서, 환경, 보건, 경제구조 등을 실질적으로 건드리고 훼손한 사례들이 도처에 허다하며, 비단 NAFTA뿐만 아니라 EU나 UNCTAD 등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연구와 개선책 제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를 쫄아들게 만드는 된서리 효과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이용해 투자대상국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입법 철회나 거액의 배상금만인 것도 아니다. 제소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투자대상국을 쫄아들게 해 어떠한 입법이나 행정조치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규제당국에 대한 된서리(regulatory chill) 효과'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는 단 하나, 즉 소송비용이다. 대략 몇 백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배상의 규모와 승소의 가능성 등을 감안해 그 정도의 비용을 부담할 만해야 실제로 이 제도를 활용해 제소에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을 값싸게 확보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제소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자가 투자대상국 관청에 '의도 통지(notice of intent)'를 보내게 되어 있는데, 이 단계에서 제소의 논리와 배상금의 크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면 국제 중재재판으로 가지 않고도 해당 국가를 뒤로 물러서게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벌어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일들은 '물밑'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법이나 정책 아이디어를 착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의 저항을 감안해 정부가 스스로 무산시키는 규제도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로 필립 모리스 사건이 있다. 2001년 12월에 캐나다 정부는 담뱃갑에 '순한 맛(mild)'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자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NAFTA 11장을 언급하면서 캐나다 정부에 항의서를 제출했다. 소송이 벌어질 경우 배상금 부담을 계산해본 캐나다 정부는 이 규제안을 철회하고 말았다.
 
 좀 더 최근의 사례도 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 주의 입법위원회는 오랜 숙의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뉴브런즈윅 주의 상황에 맞는 공공 자동차보험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고, 이 방안에 대한 뉴브런즈윅 주민들의 지지도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자동차보험 회사들이 이번에도 NAFTA 11장을 언급하며 제소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나섰고, 결국은 뉴브런즈윅 주지사가 입법위원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NAFTA는 캐나다가 새로운 공기업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권리도 결국에는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나 외국 기업의 이익을 크게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공기업이란 것은 그 정의상 국민경제의 형평과 균형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는 것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시장에 관여하고 부의 재분배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니 NAFTA에 규정된 공기업 설립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심판 과정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7)] 국제 중재심판  




 
 이번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며, 그 결정은 어떤 효력을 낳는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이 소송을 당한 국가의 공공이익, 즉 민주주의, 지방자치, 환경 및 보건, 헌정질서 등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들여다보자.
 
 분쟁당사자 둘이 만나 '쇼부 치는' 과정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국제 중재심판(international arbitration)이라는 것이 보통의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와는 전혀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우리는 중세 이래의 '상인법(lex mercatoria)'이 한편으로 각국 국내법에 상법으로 흡수된 과정,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근대 국제공법 및 국제사법 체계의 경직성을 우회하기 위한 상인들 및 투자가들끼리의 자율적인 분쟁해결 수단으로 살아난 과정을 보았다. 거기서 보았듯이 국제 중재심판이란 일정한 법적 효력의 근거와 원천이 명확하게 규정된 법체계 내에서 그 법체계가 정해놓은 절차와 규칙을 따라 행해지는 일반 법정의 재판과는 그 성격도 절차도 완전히 다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보통의 재판의 관점에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국제 중재심판을 바라보면 "뭐 이런 게 다 있나"하는 당혹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인법에 따른 심판의 과정은 사실 두 명의 분쟁당사자 간에 '합의'를 보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고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중간에서 심판자의 역할을 하는 중재자(arbitrator)가 있을 뿐이다. 합의가 성경 말씀의 정신과 합치하며 교회법적으로 옳은지, 또는 해당 지역의 군주가 공포해놓은 실정법과 모순되지는 않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서로 싸우는 두 당사자의 분쟁을 중재해 양쪽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재정(裁定, award)'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아주 거칠게 말해서, 한국식 일본어를 쓰는 것을 용서하신다면 그냥 양쪽이 모여 '쇼부(勝負)를 치는 과정'이 그 본질적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보겠지만, 문제는 이 '양쪽이 쇼부를 치는 과정'에 회부되는 사안에 사람들이 물을 마실 권리, 국가나 국민이 자국 문화를 보호할 권리,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하려는 보건정책, 심각한 오염물질을 멀리하고 환경을 보호할 권리, 국가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국의 외환관리 방식을 변경할 권리 등과 같은, 실로 전통적인 '공공이익'의 쟁점들이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상인법 전통에 따른 국제 중재심판의 관행이 공적 문제를 다루는 국내법 및 국제법 체계의 밖에 머물면서 그것을 보완하는 주변적 성격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뒤섞임이 벌어지지 않았다. '공공이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권국가가 자국 영토 안에서 지고(至高, 이것이야말로 주권(sovereignty)의 원래 뜻이다)의 권위를 가지고 마음껏 자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어느 주권국가의 공공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주권국가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다른 주권국가뿐이었고, 주권국가들 사이에 경쟁이 붙을 때에는 국제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독특한 성격을 가진 상인들이라는 집단이 이런 공법 체계에 문제를 느껴 자기들끼리 자체적인 분쟁해결 방식을 찾아 운영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운영은 어디까지나 국내공법 및 국제공법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자기들끼리의 상업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국한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는 공법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들을 국제 중재심판이라는 '쇼부 치는 장'으로 끌어내어 공법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결정하고 있다.
 
 국가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에서 소송은 투자자가 투자대상국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지만, 투자대상국은 외국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 제도의 목적은 '외국 투자자의 보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외국 투자자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앞에서도 보았듯이,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장에 나오는 '투자'의 개념은 그 포괄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넓은 범위에 해당하는 자산을 가지고만 있으면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기업 소유구조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기획연재의 첫 회에서 소개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되짚어 보자.
 
 노무현 정부의 뜻을 받들어 한국 서비스업의 꽃이라 할 방송산업을 '업그레이드'해주기 위해 폭스TV가 분연히 일떠섰다. 폭스TV는 직접 한국에 '폭스코리아'를 설립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에 대한 방송국 설립허가 허용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인 노종현 씨를 파트너로 삼아 그로 하여금 폭스TV의 지분을 80%로 하는 '새서울방송'을 설립하게 한다. 예상대로 사업은 폭발적으로 번창했다.
 
 새서울방송을 통해 폭스TV가 아시아 전체 광고 및 문화콘텐츠 시장으로 뻗어나갈 조짐이 보이자, 이번엔 AOL-타임워너가 끼어든다. 막후에서 모종의 흥정이 벌어진 뒤 폭스TV는 AOL-타임워너에 새서울방송의 지분 30%를 넘기기로 합의하면서 함께 손잡고 아시아 전체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에 불안을 느낀 중국의 차이나TV는 방어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 '옐로우 페릴 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 자회사의 명의로 새서울방송의 지분 10%에 해당하는 주식을 확보하도록 한다.
 
 이 복잡한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새서울방송은 사업의 추가적인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소유구조 변동이라는 예민한 문제가 또 불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증자보다는 사채발행 방식을 택한다. 이때 미국의 '아메리카은행'이 나서서 새로 발행된 새서울방송의 사채를 다량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날로 커지는 새서울방송의 파괴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일정한 규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새서울방송의 자산가치가 감소하게 됐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를 이용해 한국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주체는 폭스TV, AOL-타임워너, 차이나TV, 아메리카은행, 노종현 중 누구일까?
 
 "세상은 넓다. 이제 어디로 갈까"
 
 2006년에 '글로벌 리걸 그룹(Global Legal Group)'이 낸 <국제중재 2006: 국제 투자자를 위한 국제비교 법률 안내>(Shenkman, 2006)에 의하면, 이 경우 한국정부를 고소할 수 있는 주체는 '모두 다'이다. 물론 FTA의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지난 몇 년 간 국제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진 소송의 경우들을 보면 위의 가상 시나리오에서 거론된 종류의 주체들 모두가 투자대상국 정부를 고소하고 있다.
 
 최근의 투자협정들이 보여주는 경향에 따르면 첫째, 폭스TV와 같은 '간접투자자(indirect investor)'도 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둘째, AOL-타임워너와 같은 '소수주주(minority shareholder)'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아르헨티나 대 CMS의 소송이 그 예다. 미국기업 CMS는 아르헨티나의 국영기업이었다가 사유화된 에너지회사 TGN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가 심각한 외환위기로 인해 외환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고 이로 인해 TGN의 수익이 타격을 받게 되자 소수주주인 CMS가 아르헨티나 정부를 고소해 ICSID 주관으로 중재재판이 벌어진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CMS가 소수주주에 불과하므로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중재법정은 "투자협정 어디에도 '투자자'라는 규정만 있지 그 투자자가 다수주주여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는 이유로 그 주장을 묵살한다.
 
 셋째,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메리카은행과 같은 '채권 보유자'나 주주의 형태가 아닌 투자자들도 고소할 자격을 갖는 것이 거의 분명한 관행이 돼 있다.
 
 넷째, 투자협정의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노종현도 새서울방송의 법인 차원에서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투자대상국의 법에 따라 현지에 세워진 법인도 그 소유가 외국 투자자에게 넘어갈 경우 자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투자협정은 다수 존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차이나TV의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 그 악명 높은 '투자협정 쇼핑(Treaty Shopping)'의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초국적 소유구조가 형성된 21세기의 세계경제에서 기업이나 투자자가 어떤 고정된 국적에 묶여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원하는 국적의 나라로 가서 자회사를 세우든가, 아니면 그 나라의 회사를 인수해버리면 그만이다.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터넷과 한 몸이 된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이 내뱉는 회심의 한마디처럼 "세상은 넓다. 이제 어디로 갈까"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글로벌 리걸 그룹'의 투자자 안내서는 다음과 같이 권유하고 있다.
 
 "투자자들과 기업의 법률자문단은 투자의 초기단계부터 수많은 투자협정들의 최근 발전경향을 잘 살펴 그것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투자계획을 짜나가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만약 투자자가 투자하려고 하는 대상국과 투자자 자신의 나라가 투자협정을 맺지 않은 상태일 경우에는 투자대상국과 투자협정을 이미 맺은 제3국에 투자해 그곳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우회적인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투자대상국이 이미 맺은 여러 투자협정들 중에서도 투자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투자협정을 고르라는 전략이 도출될 수 있다. 이 기획연재의 앞부분에서 살펴본 네덜란드-체코 투자협정과 미국-체코 투자협정을 모두 이용한 로널드 라우더와 CME의 경우, 그리고 뒤에 살펴보게 될 벡텔 대 아르헨티나 사건의 경우에 바로 이런 전략이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외국 투자자의 우회투자 전략에 따른 국내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어디까지를 '상대국의 투자자'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세심한 검토를 하고 협상을 해야 한다. 과연 한국정부는 이런 자세로 한미 FTA 협상에 임하고 있을까? 참고로 말하자면, NAFTA의 경우는 외국 투자자가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 투자자가 국내에서 '실질적인 사업 활동(substantial business activity)'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단서를 둔다 하더라도 '실질적'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상세하게 정해놓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한미 FTA가 이 문제에 대해 엉성하게 체결되고 나면, 위에서 본대로 모든 종류의 투자관련 주체들이 다 한국정부를 국제 중재기관에 고소할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이 함께 뭉쳐서 할 필요도 없다.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기관과 룰, 투자협정을 입맛대로 골라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놓고도 여러 다른 주체와 여러 다른 곳에서 여러 다른 소송에 동시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
 
 국제 중재심판의 세 가지 특징
 
 그러면 국제 중재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먼저 투자자가 소송을 걸 의도가 있다는 통지서(notice of intent)를 투자대상국 정부에 보낸다. 앞에서 설명했던 '규제활동에 대한 된서리(regulatory chill) 효과'가 있기에 투자자는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이 통지서 한 장만으로도 자신이 원치 않는 투자대상국 정부의 조치를 예방하거나 후퇴시킬 수 있다. 통지서를 받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실제 소송이 벌어질 경우 이기거나 질 확률과 질 경우 지급해야 할 배상금의 크기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러서지 않고 버틸 경우, 투자자는 90일 간의 조회기간(period of consultations)을 거친 후 국제심판 소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소송의 과정을 살펴보자. 다만 이 소송이 공법 체계에 의해 진행되는 일반적인 소송과 구별되는 세 가지 특징으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① 규칙과 절차는 양쪽 당사자들이 결정한다
 
 국제심판 소송이란 본질적으로 분쟁의 양쪽이 각각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법적 대표(counsel)을 선임하고, 그 중간에서 심판을 진행하고 재정을 내릴 중재자(arbitrator)를 선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구성된 중재심판소(arbitration tribunal)는 양쪽 대표가 합의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 심판을 진행한다.
 
 이렇게 진행되는 국제심판 소송을 주관하는 국제적 기구와 틀은,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것들이 몇 개 있어서 대부분의 투자협정은 투자자와 국가 간에 소송이 발생할 경우 그 중 어떤 기구와 틀을 통해 소송을 진행할 것인지를 규정해놓고 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기구는 앞에서 본 바 있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다. 이것은 1965년에 130개 국이 세계은행 산하에 설립하기로 합의한 기구다. 그리고 분쟁 당사국 중 어느 한 나라가 ICSID 규약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일 경우를 대비해 ICSID는 그 산하에 '추가기관(ICSID Additional Facility)'를 두고 있다.
 
 이 ICSID 제도의 특징은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규칙과 절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규칙과 절차를 정해놓은 국제적인 제도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투자협정들 중에는 투자자가 ICSID가 아닌 '국제통상회의소의 중재법정 규칙(ICC rules)'이나 '스톡홀름 상업회의소 중재제도(SCC rules)'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인 기구들보다는 유엔 산하의 국제상법위원회(UNCITRAL) 규칙을 ICSID 대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앞에서 든 상업적 기구들은 상설조직이 있어서 그런 조직에서 중재심판 과정을 주관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지만, UNCITRAL 규칙은 그저 규칙일 뿐 과정을 주관하거나 감독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UNCITRAL의 경우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그저 그 규칙에 따라 자신들의 분쟁만을 다룰 특별 중재심판소(ad-hoc arbitration tribunal)를 새로 구성하게 돼 있다. 그리고 투자협정에 따라서는 어떤 규칙을 따를 것인가를 전혀 정해놓지 않고 규칙부터 양쪽 당사자가 협상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고전적인 특별 중재심판소(classical ad-hoc arbitration tribunal)'의 방식을 선택사항으로 올려놓은 경우도 있다.
 
 이들 각각의 기구와 제도는 서로 다른 역사적 기원과 맥락에서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이와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투자협정은 이들 가운데 몇 개를 '메뉴'로 제시해놓고 투자자로 하여금 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NAFTA는 ICSID의 두 가지 기구와 함께 UNCITRAL의 특별 중재심판소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그래서 보통 규칙과 제도를 양쪽 당사자가 함께 정하는 고전적인 국제 분쟁조정 절차와 달리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의 경우에는 투자자가 자기에게 가장 유리해 보이는 제도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투자대상국 정부를 공격하는 '규칙 쇼핑(rule-shop)'을 감행할 수 있다.
 
 ② 중재심판의 진행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다
 
 규칙과 절차가 결정되면 양쪽은 각자의 법적 대표(counsel)를 내세우고 심판관을 결정하며, 양쪽의 법적 대표와 심판관이라는 세 주체로 중재심판소가 구성된다. 심판관은 양쪽의 합의로 결정되기도 하지만, 널리 이용되는 ICSID 규칙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ICSID에서 미리 작성해놓은 명단에서 한 사람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이어 세 주체가 분쟁의 쟁점들에 관한 서류를 주고받고 반대심문을 하는 등을 절차를 거친 다음 심판관이 재정(award)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는 철저하게 세 주체만의 과정이며, 세 주체 외에는 누구도 중재심판소에 가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 진행과정 전체도 철저하게 비공개다. 양쪽 당사자는 자신의 문서나 의견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심판관은 누구이며, 양쪽의 법적 대표가 각각 누구인지도 비밀이다. 심지어 판결문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이겼는가조차 비공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쪽 모두 중재심판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조차 공표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양 당사자 외에는 어떤 사건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중재심판이 이렇게 철저한 비밀성(confidentiality)의 원칙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중세 이래 상인법의 유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장사와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온갖 사업상 기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지켜야 할 평판도 있다. 상업적 분쟁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분쟁과 관련해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공공에 알려지는 것이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원래 상인법에 의한 심판이란 무슨 공공의 이익처럼 여러 사람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그저 두 장사꾼이 만나 '쇼부를 치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니 그 내용을 공표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비밀성의 원칙으로 인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 제도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우선 1990년대 이래 벌어진 투자자와 국가 간 소송이 몇 건이었는지, 현재 그런 소송이 몇 건이나 진행되고 있는지의 숫자조차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그저 ICSID만이 소송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심판일정을 공표하게 돼 있으므로 ICSID의 자료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 전체의 대략적인 증감 추세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체 소송 건수 중에서 ICSID에 등록되어 우리가 알게 되는 소송의 건수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니, ICSID 자료를 통한 전체 추세 짐작이 어느 정도나 신빙성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에선가 얼마짜리인가의 소송이 어느 기업과 어느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소송이 좀 큰 건일 경우에는 그 판결문이 국제 법률업계에 나도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소송 양측의 명의는 물론 판결문 내용 중에서 양쪽 당사자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정보는 모두 지워진 상태로 회람된다고 한다(정보 비공개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커지자 NAFTA의 경우 소송 관련 통지서를 보관하고 있다가 요청하는 이가 있을 경우 그 사본을 교부하도록 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소송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포함해 소송 사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건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양쪽이 공개에 동의하거나, 혹은 어느 한쪽이 그것을 널리 알려서 공론화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뿐이다. 따라서 소송에 걸린 금액이 무척 크거나 아주 중대한 공적 이익과 관련된 소송의 경우에는 소송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고 그 사건의 내용도 비교적 잘 알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소송 자체의 과정에는 양쪽 당사자와 심판관 등 세 주체 외에는 누구도 참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계속 불거지자 중재심판소들은 '심판소의 벗들(amici curiae)'이라는 이름의 틀을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심판소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환경단체나 지역주민을 비롯해, 투자자와 투자대상국이라는 당사자 이외의 이해집단에게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을 심판소에 전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양 당사자가 동의할 경우에만 가능하며, 설사 이 틀을 이용해 이해집단이 의견이나 입장을 심판소에 전달한다 해서 그것이 어떤 구속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재판진행 과정을 청취하거나 관련 문서들을 열람할 기회가 '벗들'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③ 중재심판소는 법적 대표들은 물론 심판관도 보상을 받는 상업적 원칙으로 운영된다
 
 우리가 아는 보통의 재판에서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그 재판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특히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재판인 경우에 분쟁의 양쪽 당사자는 재판의 절차와 규칙은 물론 판사 선임에도 어떠한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상식에 속한다. 판사가 분쟁의 양쪽 당사자와 금전적인 관계로 얽힌다는 것은 완전히 상식 밖의 일이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을 다루는 중재심판소는 분쟁의 양쪽 당사자의 법적 대표는 물론이고 심판관도 보상을 받는다는 상업적인 원칙 아래 운영된다. 이는 일반적인 재판의 상식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상인법의 오랜 전통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분쟁이 생겨 골치가 아프게 된 상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재심판소의 심판관은 그 분쟁을 해결해주는 값진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셈이니 마땅히 그에게 응분의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심판관에게 지불되는 보상의 금액은 얼마나 될까? ICSID는 2002년에 심판관에게 지불되는 일일 수수료를 11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했다고 한다. 이렇게 했어도 ICSID의 심판관 보상 금액은 다른 여러 중재제도들에 비하면 제일 싼 편이라고 한다. ICSID의 추정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행해지는 중재심판에서 심판관이 받는 수수료는 평균 22만 달러라고 한다.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각각 자신의 법적 대표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게다가 심판소 유지에 필요한 각종 비용까지 지불돼야 하니 소송비용은 몇 백만 달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메탈클래드(Metalclad) 사건으로 인해 멕시코 정부는 소송비용으로만 40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에서 본 CME 사건의 경우에는 체코 정부가 두 개의 소송에 모두 1000만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이 심판관 보상비까지 포함된 금액인지는 확실치 않다.
 
 누구를 심판관으로 선정하느냐가 최종 심판결과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국제법 체계는 물론 심지어 판례도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가운데 분쟁의 양 당사자가 팽팽하게 맞서는 중재심판 과정에서 심판관이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를 쥘 수밖에 없다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제 중재심판의 경험이 있는 법률가들은 그 숫자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 한 법률가의 표현대로 서로 뻔히 다 아는 일종의 '클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정 기업이 제기한 소송의 중재심판에서 그 기업의 법적 대표로 일한 법률가가 다음 번에 그 기업이 제기한 다른 소송에서는 중재심판의 심판관으로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재심판에 나올만한 법률가들에 관한 정보에서도 그렇지만 그들과의 인적 친밀성에서도 국가보다는 초국적 기업이 더 나을 수밖에 없고, 그런 법률가들은 국제 중재심판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평판을 쌓아 계속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초국적 기업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Insardybroads
[2008/2/23 (15:43)]
Ciao

<a href= http://access.wa.gov/exit.aspx

merionni
[2008/3/27 (10:24)]
Thank you! http://ni34qb.it <a href="http://ni34q

다음글 이전글 목록 수정 삭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