蠻勇은 勇氣가 아니다!


  감성적인 대응수단의 선택은 의외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기가 용이하다.정치적 propaganda로서 인간의 直情에 호소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주 등장한다.지도자의 그런 선택에 국민들은 쉽게 동조하고 열광한다.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가들이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세기 지구촌은 서세동점 제국주의의 파고가 드높던 시기였다.
서양의 문명이 선교사를 앞세워 미명의 아시아를 끊임없이 침탈하려 하였다.개방과 자유의 물결은 이제 잠자던 동아시아를 충격과 변화속으로 끌어냈다.그러나 부패와 아집에 사로잡힌 구체제의 지도자들은 변화를 거부하며 더욱더 단단한 쇄국의 길로 들어섰다.
조선의 흥선대원군이 그러했다.

  그는 자신의 아집과 독선으로 나라의 미래를 발목잡은 사람이다. 오늘 북한의 김일성,그리고 김정일은 주체사상으로 쇄국을 고집하고 이를 숭상하는 한국내 젊은이들까지 생겨나는 것을 보고 어쩌면 역사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지 통탄해 마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일이야 자신의 생존을 쇄국에 걸고 있는 처지이기에 이해가 가능하지만 우리의 자유 발랄한 젊은이들이 그들 부자의 주체사상을 마치 민족주체-자존의 멧세지로 착각하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더불어 최근 월드컵 4강진출을 계기로 부쩍 늘어난 거리행사들을 보면서 우리가 너무도 많은 착각속에 이제는 착시현상까지 일상화하고 있지 않나 염려스럽다.

  국가와 민족의 자존은 우리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그것을 지키고 발현시켜 나갈것인가는 냉철한 비전(vision)이  필요하다.

감상적 대응으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오히려 약화시키거나 活着근거를 없애버리는 그야말로 빈대잡을려다 초가삼간마저 태워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흥선대원군은 조선 해안을 침범한 洋夷를 물리친 것을 계기로 더욱 의기양양하여 곳곳에 척화비를 세우고 우리의 가치를 지키자고 선무하였다.

  그는 개방은 곧 매국이라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무릅쓰고라도 단단한 아집속에 자신을 가두기에 여념이 없었다.변화의 물결은 강화포구에서 물러갔지만, 그로인한 역사의 냉엄한 흐름앞에 그가 그토록 내세우던 자존을 지키지 못한채 조선은 끝내 역사의 광장으로 끌려나와 식민지의 비운을 감수해야만 하였다.

우리는 혹시 흥선대원군을 용기있는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착시현상 내지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시간이 되었다. 그를 서양오랑캐를 상대로 민족의 자존을 지켜낸 영명한 지도자로 평가하고 마는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고 있지나 않은지?

  필자는 오늘 우리가 그시대 상황과 너무도 흡사한 국제적- 국내적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부터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또다시 한말의 무지가 애국-애족으로 치부하며 위대한 민족의 진운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긴장되고 개탄스럽다.

  정치지도자의 만용을 용기라고 착각하여서는 아니된다.

  그 누가 이라크의 후세인을 용기있는 지도자라고 이름할 것인가?
자신의 맹목과 어리석음을 용기로 포장하여 소위 도그마적 쇼비니즘에 빠져들고 있는 지도자를 선택한 나라는 진정으로 불행한 민족이다.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는 선지자적인 혜안으로 대중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잡는 데에 있다. 거품같은 인기나 여론에만 급급하는 지도자야말로 가장 저질의 장삿꾼에 불과하다.

  자유무역협정을 국회의원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표결을 미루므로서 국가의 신뢰에 먹칠을 하고  국제적 의심을 가중시키는 상황은 하나의 편린에 불과하다.



  이 중요한 변화의 세기에 우리는 현재 가벼운 개그에 너무 많은 비중을 주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1년이 넘게 지속되는 촛불모임에서부터 금융기관의 기습파업까지 우리는 공동사회의 윤리적 도덕심마저 저 버린 비이성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야 할 시간이다.

  독재자는 제일먼저 광장을 만든다.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수많은 군중을 한자리에 모이게 함으로써 그들을 선전 선동의 도구화하여흥분시키고 드디어는 비이성적 열광상태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다.

그들은 주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두려워 한다.판단과 결정은 오로지 지도자 한사람의 몫이다.군중들은 한자리에 모여들어 지도자의 결정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자유밖에 없다.수많은 군중들이 스포츠나 관극이 아닌 정치적 구호아래 집합하는 현상은 사회가 비이성적 상태로 전락해가는 모습일 뿐이다.결코 건전한 정치형태(이성적)는 아닌 것이다.

  나는 월드컵으로 달궈진 국민적 에너지가 표피지향의 감성으로 끝나지 말고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위대한 철학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여기서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집안에만 있지말고 부지런히 해외를 다니면서 이 거대한 변화의 속도를 몸으로 체험할 것을 다시 한번 권고한다. 다행인 것은 그가 매일같이 인터넷을 실천하는 네티즌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범위가 국내의 잡다한 잡음을 둘러보는 정도에 그친다면
그 또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문명과 역사의 변화를 바로 보았으면 하는 욕심이다. 국가사를 뛰어넘는 인류사의 새로운 변화와 회오리를 진정 바로 보았으면 한다. 19세기의 변화가 수공업적 파도였다면 현재 다가오는 격한 조류는 국가와 대륙을 한꺼번에 집어 삼키는 거대한 해일이다. 이런 변화를 바로 보지못하고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내앞의 작은 이해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 중대한 변혁의 세기에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향해 걱정하는, 그리하여 거품같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진실로 용기있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2003.  6.  19)

                 박   상   문 (ceo@lawsun.com)